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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사투리는 어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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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8-26 16:57 댓글 2건 조회 9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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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런 사투리는 어때요. 2

앞에 1탄에 이어서 올립니다.
너무 량이 많으면 한 번에 다 올라가지 않아서 부득불 나누어 올렸으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7. 야단법석과 견주어 표현할 수 있는 사투리는?

일엽편주

일구지난설

난봉꾼

지랄발광

 

8. 지금처럼 배달식이나 간식이 풍부하지 못 하던 시절은 먹는 것도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잘 먹지 못한 고로 늘 상 배에서는 꼬르륵하는 소리가 끈이지 않았다. 그래도 배고픔을 달래 줄 수 있는 간식이라도 있으면 천만다행이고 없으면 배를 곯면서 동지섣달 긴긴밤을 지내야 했다. 텔레비전이라도 있었으면 그것을 보면서 무료함을 달랬을 터인데 그런 것도 없었는지라 기나긴 밤은 그저 길기만 했다. 덕분에 시간을 지금처럼 잘 가지 않았으리라 본다. 당시에 먹었던 간식 중에서 가장 만만했던 것이 무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데 이놈은 먹을 때는 시원한 맛이 나고 배도 부른데 먹고 한참 지나면 배에서 슬슬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을 무엇이라 표현했는가?

속 터진다.

대롭다.

율 물이 올라오다.

샛목이 오른다.

9. 지금의 농사는 과거보다는 식은 죽 먹기 식으로 변했다. 지게에 거름을 지고 나른 후 거릿대를 가지고 흩뿌렸던 시절이었다. 노동의 강도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기계화와 자동화가 되면서 한결 쉽게 농사일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농삿일이 다 힘들지만 그 중에서 거름 퍼내는 일은 이중삼중으로 더 힘들었다고 본다. 예전에 가장 대중적으로 쓰였던 거름은?

귀재

지시랑 물

마웃

염쇠 똥

 

10. 피자가 아무리 맛있다 하여도 우리나라의 부침개 만큼의 감동적이고 담백한 맛을 낼 수 없으리라 본다. 다음 중 과거판 후라이팬은?

부지깽이

소두뱅이

양솥따까리

버레기

 

11. 과거에는 국수계통은 그 생산서부터 먹을 때 까지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표현한다면 모든 것이 수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에 칼국수나 만두피 등을 만들 때 밀가루 반죽 반데기를 얇고 넓게 펼 때 쓰였던 바탕체는?

쌍판데기

안반데기

③ 절구공이

방꽁이

 

12. 모랭이, 고바이, 말랑 같은 말은 아직까지 일부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요. “모랭이를 돌아보니 고바이가 저쪽에 보이네. 그 위가 아마 말랑인가 봐.”정도로 사용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로 어떤 경우를 의미 하는 말인가?

역정

경치

시간

지형

 

13. 우리 인체의 오장육부도 이름이 제각각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같은 신체부위지만 어떤 지방에 가면 특이한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 중 신체의 일부를 이야기 하는 사투리가 아닌 것은?

궁뎅이

오금팽이

복상씨

망령

 

14. 우리가 시력이 약화되거나 눈을 보호하기 위하여 쓰는 안경의 사투리는?(일본말 냄새가 좀 나긴 하는데....)

메가네

가름배

멀뚝공이

자리공

 

15. 참깨나 들깨를 볶은 후 절구에 적당히 빻아서 만들 수 있는 음식 소스는?

보셍이

미셍이

미투리

지렁물

 

16. 다음에서 가장 빠른 상황을 표현한 사투리는?

하마터면

놀램쩔에

어쭈구리

④ 벼람박에
 

17. 예전에 쌀이나 보리, 조 같은 것을 도정하기 위해서는 절구나 연자방아, 디딜방아, 물레방아를 주로 이용했다. 찌어 지는 원리는 충격과 마찰을 이용하여 껍데기를 깨 내는 과정인데 이것이 이루어지는 영역과 도구가 있어야 한다. 보통 방꽁이는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도구로 이용되는데 그 방꽁이를 받혀주는 영역을 무엇이라 하는가?

멀뚝공이

치 질

디딤돌

방 확

 

18. 예전에 지구의 온난화가 심하지 않던 시절 우리 동해안에는 무진장 많은 명태가 잡혔었다. 명태란 이름은 북한의 명천에서 태라는 사람이 잘 잡는 고기라 하여 이렇게 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우리 동해안 사람들의 연명에 엄청난 기여를 했던 명태가 날씨가 더워지면서 종적을 감춘 지 한참 된 것 같다. 그래도 명태에 애환이 있는 기성세대들은 아직까지도 명태의 향수에 젖어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명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생선이라 했것다. 명태의 부위 중 깍두기나 배추김치에 넣어 버무려 먹으면 특이한 식감을 줄 수 있을뿐더러 모양새도 그럴싸한 부위는?

지누아리

아가리

써거리

 

19. 남자들은 싸울 때 주먹이 날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싸울 때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자박쌩이

② 귀쌈베기

③ 지랄베기

④ 영마리

 

20. 전설따라 삼천리를 보던 시절, 지금처럼 가로등도 발달하지 못하고 호롱불이나 등잔불에 조명을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맑은 날은 달 빛이라도 의존할 수 있었으나 흐리 날이나 비오는 날에 밭깥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이런 날이라고 일상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특히 비가 부슬부슬 오거나 안개가 자욱한 날 밤에 나들이를 해야 할 경우 ( )이라는 곳을 지나갈라치면 머리카락이 쮸볏쮸볏 서면서 소름이 쪽쪽 끼쳣던 기억이 난다. ( )에 어떤 곳이 가장 그 강도가 컸을까?

언부렁

정낭

서낭당

곳집

 

문제를 좀 의미있게 내 보려고 하니 힘이 드네요.

사투리와 이런 문제를 연관지어 보니 한층 더 새로운 맛도 좀 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투리는 말을 했을 때 더 실감나리라 보나 이런 방식으로 추론을 해도 색다른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어찌하였건 우리고장의 귀한 전통인 사투리가 점점 사라지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현대판 언어도 좋지만 우리의 옛 언어나 사투리도 나름대로 감칠맛이 있다는 것을 알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비록 사투리를 많이 구사해서 촌놈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한이 있다하여도.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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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연2님의 댓글

김석연2 작성일

조규전님의 이 글을 읽고 난 왜 입가에 웃음이 실실 났으까요?
그건 우리세대의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어렸을때부터 늘상 사용하던 말을 어느 순간 잊어버렸다가 밖으로만 나돌던 서방이 찾아온듯
반갑기만 한 여인네 심정이랍니다.
사투리는 지방의 색을 뚜어넘어 우리들이 고이고이 간직하고 보존할 보물이란 생각입니다.
사투리 한 마디엔  한사람의 역사가 담겨있고 가족들의 애환이 담겨 있을수도 있어 표준어만 고집할게 아니란 생각입니다.
스무문제중에 9번만 빼고 다 맞췄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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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선배님,
제 글 잘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전에는 사투리가 촌 스러움의 대상이 되었을는지 모르지만
우리 지방에서 몇 천 년 동안 갈고 닦아서 사용하던 훌륭한 언어라 봅니다.
우리만이 가지는 고유한 문화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