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날 위해 기도하지 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8-24 08:29 댓글 2건 조회 830회

본문

                         날 위해 기도하지 마.



날 위해 기도하지 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상당수 있으리라 본다.

반대로 날 위해 기도 해 줘.”의 대상자도 전자 못지 않게 많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길 원치 않고 또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해 주길 기원하는 복합적인 세상에 우리는 던져져 있다.

 

그렇다면 기도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반문을 할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에 염원을 담아 그것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하는 간절한 바램이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기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축에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 언급된 바와 같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별로 달가와 하지 않은 부류를 좀 짚어 보고자 한다.

 

자신을 위하여 누군가 기도를 해 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보았을 경우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자체가 부담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기도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것 쯤은 깔고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배부른 사람이 앓는 소리를 하면 미꾸알스러울 때도 있다는 것이다.

 

한 번 살펴 보자.

모처럼 애를 낳아 키우는 초등학생 맘의 예를 들어보자.

아니 영역을 좀 넓혀 중 고등학교까지라 해도 말이 될 것이다.

학생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의 염원은 오로지 하나, 자식의 성적이 어떻게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게 된다.

기대했던 것 보다 낮게 나오는 성적에 가슴졸여야 하는 한국의 맘들은 한 둘이 아니라 모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부모의 염원을 다 헤아려 줄 수 있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운이 좋아 자신의 자식이 월등히 남보다 나으면 모르겠으나 그런 경우는 대한민국에서 0.1%도 채 안되리라 본다.

그렇다면 나머지 학부모들은 자신의 염원에서 벗어난 자식을 자신의 염원속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한다고 본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론을 통하여 많이 보아오고 있다.

 

현실에서 자식에 대한 염원이 만족안되면 영적으로 넘어가게 된다.

자식을 위해서 교육적, 물질적인 지원에서 한계를 느낀 나머지 영적이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액션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자식을 위하여 밤낮으로 집안이던 종교시설이던 간에 가리지 않고 기도빨을 세우게 된다.

 

이를 본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미안함을 넘어 죄책감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자신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 까지도 미안한데 정신적으로 까지 염원의 영역을 넓히는데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자식의 노력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그 윗 단계에 호소하는 것은 우리가 신이 아니기에 필요로 한 것인지 모른다.

 

필자도 과거에 내 자식이 수능을 보러 갈 때 우연찮게 대구에 갈 기회가 있었다.

볼 일을 보고 그냥 올 수 없었다.

마누라가 간 김에 그 영험하다는 팔공산 갓바위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라는 것이다.

당시 엄청나게 더웠었는데도 불구하고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팔공산 갓바위로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올라가 본 갓바위 분위기는 그야말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충격적으로 다가 왔다.

기돗발이 세고 영험하다고 해서 그런지 기도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엄청 넓었는데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기도를 하고 싶어도 무릎을 꿇고 기도할 공간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다.

어쨌던 갔다는 인증샷은 날리고 돌아왔다.

그 해 우리 애가 수능을 봤는데 대박의 반대쪽으로 흘렀다.

당시 나의 갓바위 기도가  신이 감동을 받을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염원이나 기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부담으로 비쳐진다면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에 하나 기돗발 덕분에 그 사람의 인생이 잘 펴 졌다면 훗날 부모의 기도발에 감사를 표할지 모르지만 그런게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반전되기도 용이치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다.

 

부모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자.

나는 너에게 기도마저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공병호님의 댓글

공병호 작성일

귀하가 쓰신 본문중에 " 학생을 가지고 있는"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인정하는 대목이라 생각되어지며
학생을 두고있는 학부모 ... 또는 학생을 거느리는 학부모로 표현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profile_image

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지당하신 말씀이라 생각은 됩니다.
학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어쩌겠습니다.
키우면 키울 수록 소유보다 더 독한 대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