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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웅변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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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단파파 작성일 2018-08-15 10:47 댓글 5건 조회 1,0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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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초등) 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밤색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시내 웅변대회 나간다고 어머니가 20리 길 시장에 가 사오셨습니다.

친구들 대부분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입니다.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발이 아프면 벗어 양손에 들고 맨발로도 다닐 때였으니까요.

신발 해어질까 아까워서도 그랬습니다.


반공 웅변대회-

강릉 "강릉극장"에서 열렸었지요.

5분 원고를 달달 외우고 충분히 연습도 하고 나갔는데 막상 연단에

올라보니 극장 가득히 메운 청중들, 그들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온몸이 경직되고 새가슴처럼 콩닥거렸습니다.

속으로 「할 수 있어. 해야 돼... 」


눈은 아예 다른 쪽으로 피하면서 원고를 외워 나갔습니다.

중간 부분쯤 가서  "~.까?"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려쳤습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그런데 그만 다음 원고가 새카맣게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웅변 중 꼭 책상을 1-2번 힘껏 내려쳐 박수를 유도하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당연히 등외 탈락이었지요.

심사위원장님이 심사평을 하면서

"성량과 억양이 풍부하여 앞으로~.."라고 용기를 주었기에 겨우

얼굴을 들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웅변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고3 때 강릉방송국 주최 "6,25 12돌 승공 학술토론대회"에 나가

개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접은 건, 강원도청 문화회관에서 열린

"향군 창설 1주년 기념 반공 웅변대회".

직장 대표로 삼척군 예선을 거처 올라가 상금 3만 원 받았지요.

그 돈으로 약혼반지 사려고 북평에서 송정까지 미니버스를 탔다가

몽땅 쓰리를 만났었습니다. 금 1돈에 2,800원 시절입니다.ㅎ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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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선배님의 소시적 생생한 인생 경험 스토리 잘 읽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쓰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쓰리도 일종의 거래라 보면 될 것입니다.
거래 중에 아주 불량하고 악질적인 거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에  쓰리를 당하지 않았으면 인생이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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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광복절 날 일본말 써 미안해요.
쓰리= 소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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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ki님의 댓글

kimyki 작성일

한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선배님의 글을 통해 처절했던 한 시대의 스글픈 단면 속에서
오히려 애틋한 연민과 알 수 없는 그리운이 되살아나는 이유가 뭔지요
젊은 총각의 설레임과 약혼의 기쁨 마져 송두채 소매치기해간 그 사람은
어떤 여자를 만나 어떻게 살았을지 자꾸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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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웅변가셨던걸 몰랐습니다.
정치를 하셨더라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셨을 텐데 아쉽습니다. 
쓰리는 쓰리고 약혼은 유효 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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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연2님의 댓글

김석연2 작성일

금 열돈을 잃어버려 그 마음이 어땟을지
돈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하는분의 반지를 잃어버린것같아
쓰라린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드셨을걸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