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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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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석연2 작성일 2018-05-29 09:48 댓글 1건 조회 6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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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집사람 친구가 가까이 산다.

우리는 단독이고 친구네는 아파트인데 친구네는 거기서 산지가 30년도 넘는다.

결혼해서 몇 년 안돼 아파트를 사더니 거기서 아이들 낳아 공부 가르치고

결혼시켜 둘다 출가 시키곤 이젠 남편과 둘만 살고 있다.

친구 남편은 나와 같은 직장에 다녔었고 지금은 퇴직하여 작은 밭을 가꾸며 편하게 살고 있다.

남들 주식 살 때 주식 안 사고 그돈 모아 두었다가 땅을 샀는데

넓은 땅은 아니더라도 둘이 농사짓기 알맞은 땅이라 그곳으로 매일 출퇴근 하다시피 한다.

 

농사도 알뜰히 지어서 친구네가 농사 지은건 무엇이든 맛있다.

고구마도 어찌나 맛있는지 다른집과는 비교가 안될만치 맛있어서

해마다 친구네 고구마를 사 먹고 있다.

 

집사람과 친구는 마음이 잘 맞는 모양이다.

전화도 자주하고 수시로 친구네 밭에 불려 간다.

풋고추가 달렸으니 따 먹으라는 둥 토마토가 익었으니 먹으러 오라는 둥.

 

어제도 열무를 솎아 낸다고 가져 가라고 해서 쌀포대 한가득 얻어왔다.

저걸로 뭘 하려나 지켜보니 열무김치를 만들고 있었다.

재료를 뭘 넣는지 열무를 어떻게 버무리는지 관심도 없었고 어서 먹어보기만 바랬다.

하루를 기다려야 맛이 난단다. 어떻게 삭이는지도 도통 관심 밖이다.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나왔다.

살아갈 듯이 펄펄한 열무가 시퍼런 자태로 위용을 떨친다.

묵은지 김치로 끓여놓은 참치국은 아예 뒤로 물리고 말았다.

익히 열무김치의 시원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입 가득히 열무김치를 씹는 맛을 어디에 비교할까?

와삭하는 경쾌한 음과 시큼 달콤한 국물을 넘기는 맛은

오늘같이 무더운 날엔 호텔 뷔페 부럽지 않으리라.

 

 

동네 뒷산 산비탈 한켠에 잔솔을 베고 풀뿌리를 뽑아 만든 작은 밭

돌멩이가 더 많아 호미도 잘 들어가지 않는 밭

물도 나오지 않아 하늘만 쳐다 보는 밭에

생짜로 무씨를 뿌리고 비오기를 기다리다

어느날 비온 뒤 싹이 올라와 환호성을 지르던곳.

어머니는 어린싹을 보며 활짝 웃으셨다.

봐라, 싹이 올라 왔잖나” 

햇낳은 여동생도 내 등에서 까르륵 까불어 댔다.

무 어린 싹이 모두를 즐겁게 했다.

 

열무가 언제 자랐었는지 어머니께서 한다라이 이고 오셨다.

열무김치를 하신단다, 우리는 관심도 없었다.어제같이...

다음날 노란 메좁쌀이 섞인 밥과 열무김치가 올라왔다.

아버지는 열무김치가 맛있다며 국물까지 들이킨다.

우린.....우리는 먹다말고 뱉어버리고 말았다.

양념도 없이 소금에만 절인 열무김치는 쓰겁고 짜서 먹지 못할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고지바가지 물 말은 누릉지에 열무김치 얹어 드시며 연신 맛있다고만 했다.

맛있다고 하는건 빈말이 아니었다.

물말은 밥이 너무 맛있을땐 들이쉬는 숨소리마저 다르다.

쇳소리가 나는 듯한 숨소리는 밥이 맛있다는 증거이다.

어머니가 그랬다. 저 맛도 하나 없는 열무김치가 그리도 맛있을까?

 

 

들숨에 맛있어 하던 소리는

그게 곧 배고팠음의 소리란걸 왜 몰랐을까?

금방 아기를 낳고 젖을 물려야 할 어미가 찬밥 더운밥 가릴수 있었으랴?


곤궁한 살림에 아이들 도시락은 있는대로 싸주고

남은건 누룽지 한조각.

물에 불려 물이 더 많은 고지바가지 아침밥.

아이들이 볼 새라 돌아 앉아 잡숫던 모습.

 

열무 김치 먹던날

목이메어 돌아 앉아 먹던 날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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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열무김치 맛처럼 맛깔스런 글맛
끝내는 뭉클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