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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소꿉놀이 하던 그녀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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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국민학교 들어가기전에 나는 퍽 자주 할머니집에 갔었다.
아버지는 기회만 되면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갔고
나를 할머니한테 맡기고 아버지 볼일을 본것 같다.
나보다 일곱살 많은 형은 학교에 다녀야하니 집에 있어야 했고
두살 적은 동생은 아직 젖먹이라 엄마한테서 떼어 놓을수 없으니
한창 말 듣지 않는 서너살 먹은 나를 떼어놓을 요량으로 할머니한테 맡긴것 같다
말썽피우는 아이를 시골에 맡기는 줄도 모르고 난 할머니한테 간다고 좋아라 하기만 했다
어느해 가을엔 지붕갈이 한다고 초가집 이엉을 바꾸는 작업을 하던 날이었다
사다리밑에서 놀면 일하기 거추장 스러우니 할아버지는 다른데 가서 놀으라고 했는데
난 어른들의 일을 돕겠다고 새끼줄을 올려 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나무라셨고 난 그게 서러워서 크게 울었다
내 딴에는 힘들어 하는 어른들 도울 요량이었는데 그것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큰 소리만 쳐서
여간 서러운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 여름날엔 앞 냇가에 가서 새우를 잡는다고 열여섯먹은 아저씨가 나를 데리고 나갔다.
(아버지의 동생이지만 아직 장가를 안가서 아저씨라고 불렀다)
한낮도 아니고 컴컴한 밤에 후랏쉬만 가지고 갔는데 난 조그만 노란 주전자를 들고 따라 다녔다
새우를 잡았는지는 기억에 없고 집에 들어오니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밤낮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나" 그 소리는 아직도 또렸이 들린다.
"밤낮"이란 억세게 투박한 격앙된 소리를 말이다.
토굴이 있던 자리, 지금도 그곳이 어딘지 찾으라면 찾을수 있을 것이다. 함석집 옆 굴 말이다.
밤나무가 많았던 함석집 부근 동산은 단단한 마사토였고 그 마사토를 파고 굴을 만들었었다.
누가 무엇 때문에 파 놓은 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은 우리들에게 안성맞춤 놀이터였다.
굴속에 들어가면 마침 벽 흙이 노랗고 하얀 색으로 이루어 져서 백설기 떡 같기만 했다.
우리들은 그 흙을 파내서 사기조각에 담아 소꿉놀이를 했다.
어른들의 흉내를 낸다고 사기조각 쟁반에 뽀얀 흙을 밥이라고 퍼서 올려 놓고
맛있게 먹으라고 하면 정말 맛있게 먹는 시늉까지 했다.
그 때의 내 색시는 어쩌면 너였는지 모르겠다.
어렸지만 남자여자의 구분을 할줄 알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도 분명히 있었던 모양인지
다른 아이들을 제쳐두고 널 택했던게 지금도 희한하기만 하다.
어린시절은 우리들에게 꿈 그 이상이다. 하늘을 향해 그 시절이 그리워 웃음을 던져본다.
친구야 친구는 이런 나를 똑같은 심정으로 미소지을거라 생각한다
우린 같은 마을 친구였으니까. 함석집 토굴속에서 소꿉놀이 했던 친구였으니까.
친구가 그리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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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그래요.
사금팔이 갖고 소꿉장난하던 때의 친구,
소꿉친구가 보고싶어지네요.
희한하게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