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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22 – ‘청춘의 십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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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신파조의 제목이냐고 할 것이다.
신파조 맞다.
몇일 전, 학교 영화관에서는 아주 오래된 영화 한편이 상영되었다.
제목은 ‘청춘의 십자로’였는데 그러니까 1934년, 무려 80여년 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이름도 생소한 안종화라는 감독의 신파 무성영화였다.
상연관에서는 1930년대 당시와 똑 같이 변사와 악극단 까지 출연하여 그 시절을 재현했는데, 통속적인데다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시나리오의 그야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비극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어줍은 연기와 변사의 해학 넘치는 말품에 객석은 상영 내내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필자가 처음 영화를 마주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 무렵, 울퉁불퉁 신작로 길을 따라 십여리도 넘는 초등학교운동장에서 형 누나들의 목말을 번갈아 타며 본 이 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였다.
눈같이 하얀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에 매료되어 내용은 잘 기억에 나지 않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내용과는 상관없이 참 야릇하기까지 한 제목의 영화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모든 예술의 장르를 망라한 영화만의 오묘한 맛에 흠뻑 빠져 살다가보니 평생 동안 본 영화의 편수가 3,000여 편이나 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많은 영화를 볼 줄 애시당초 예상도 않았기에 일일이 기록을 해놓지는 않았으나 습관처럼 거의 한 달에 두 번 꼴로 보는 극장영화와 TV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합산한 어디까지나 산술적인 수치다. 해서 나는 가장 최근에 TV를 통해 본 EBS 주말 명화극장 ‘인사이드’를 내 인생 3,000번째 영화로 기록해 놓기로 한다.
3,000편을 러닝타임 2시간씩 계산하면 6천 시간, 날짜로는 250일이나 된다. 영화를 보기위해 오고간 시간까지 따지면 살아오는 동안 1년여를 온전히 영화의 바다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낭비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남의 인생을 살았나? 하는 생각마저도 갖게 한다.
시내 학교 지도과 선생님들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의 눈을 피해 변장을 하고 시내 극장들을 헤집고 다니던 흑백영화 같은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청춘의 십자로’에서 극장은 그리고 영화는 내 삶의 '인사이드’였던 거시어~~떤 거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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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중학교 때 강릉극장에서 본 무성영화 중에 내 기억으로는
'아리랑', '이수일과 심순애', 검사와 여선생'을 얘기했더니
아내는 국교 3년때 봤다는 '잃어버린 찌미'를..
덕분에 오늘 아침 식탁 대화가 풍성했습니다.
아니 풍성하"..였던 거시어~~떤 거시었~~습니~~다." ^^ㅎ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ㅎㅎㅎ
그러셨습니까.
영화가 반찬으로 밥상위에 올랐습니까.
옛 시절을 생각하면서 사모님과 손잡고 극장 한번 다녀오세요.
요즈음에는 '마약왕'이 매우 잼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