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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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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예전 한 때 모 광고 카피 중에 “빠름, 빠름, 빠름”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이 회사가 개발한 제품에서는 빠름이 생명이라는 모토를 걸고 위와 같은 멘트의 광고를 날렸다.
물론 대박을 쳤다.
빠름이 대세였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빠름을 강조하는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본다.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관념이 우리의 문화를 송두리째 바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양반문화가 주종을 이루었다.
일제 침략기 이전인 조선말엽까지도 치뛰고 내리뛰는 등 빠른 식의 행동은 경망스러움의 대표적 케이스였다.
비가와도 뛰지 않았으면 아무리 급해도 발바닥이 보이는 것은 양반으로 용납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걸음도 총총히 걸으면 상놈 취급을 받았기에 의도적으로 어그적 어그적 걸어야 만 했었다.
그 정도로 슬로우 문화가 어느 날인가 빨음 문화로 전환하게 된다.
말이 필요 없다.
느린 것이 곧 죽음인 문화가 우리에게 스며든 것이다.
이 빠름문화 덕분에 우리는 고속성장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본다.
건물을 지어도 빨리빨리, 자동차는 더 빨리 달려야 했고 인터넷은 고속도 모자라 초고속으로 전송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으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빨리빨리(palipali)라는 말이 국제 언어로 통용이 될 정도로 국제화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북이처럼 느려터진 것 보다야 빠른 것이 나을 것이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세상에 느릿하게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답답함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정이 안 간다는 것이다.
뭣이던 재깍재깍 이루어져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 생활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여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나를 얻다 보니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여유고 뭣이고 간에 느린 것은 이제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잘 못 하다보면 죽는 것도 빨리빨리의 시대로 가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은 정 반대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조선시대나 구한 말, 근대 시대가 죽음에 있어서 만큼은 요즘보다 더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았나 하는 어거지 생각도 해 본다.
어찌하였던 빠름의 문화로 인하여 우리의 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덕분에 세월도 엄청 더 빨리 가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처럼 부존자원이라곤 쥐뿔도 없는 민족에게 뭔가 남다른 매력이 없으면 이 험악한 세상에서 생존하기가 용이치는 않으리라 본다.
하지만 빠름만 추구하다보면 정작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다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빠르게 살아가는 관계로 거기에 편승하다 보니 내 자신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망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빨리 세월이 흘러가면 내게도 뭔가 새로운 세계가 열리겠거니 하는 기대감이 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일정 시간이나 세월이 필요한 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다릴 사이 없이 독촉하는 세상으로 온 것이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왜 아이가 없냐고 다그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빠름의 문화를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 맞긴 맞다고 본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빠름에 대열에 끼다 보면 정작 느림이 요구되는 영역을 간과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빠름과 느림이 적절히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 때도 된 것 같다.
빠름을 강조한 나머지 너무 서둘다 보면 그 이면에 여유라는 것을 맛 보지도 못하고 저승에 가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더 낭만적인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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