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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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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개소리
개소리부터 라는 것 부터 먼저 들먹거려 보자.
개소리의 출발은 개가 짖는 데서부터 출발한 언어가 아닐까 싶다.
개가 짖어서 어떤 가치가 발생되는 것 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개가 짖어서 가치가 많이 나왔다면 개소리라는 것 까지 폄훼해서 써 먹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개의 입장에서 봤을 경우 주인을 보호해 준다거나 도둑이나 강도로부터 안전을 미리 지켜 주는 업무에 대해서는 다른 짐승들이 흉내지지 못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은 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다 보니 개가 짖는 소리를 그저 개소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 않나 싶다.
개가 짖는 소리에 인간처럼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소리가 개소리인지도 모른다.
단 인간이 인식하기에는 개 주제에 뭘 아냐는 식으로 접근을 하다 보니 개가 짖는 소리가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말하는 이야기 중에는 개가 짖는 소리 보다 못한 말들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역정부터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소리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의식 없이 개소리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내 귀에 거슬리면 개소리로 인식하는 의식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복음이 될 수 도 있고 개소리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 ‘정직’이라는 말을 누가 했다고 하자.
하나는 공자가 말씀하셨고 또 하나는 정직을 가훈이라고 외쳤던 우리나라 모 전직 대통령이 말씀을 하셨다고 한자.
같은 정직이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는 복음과 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나머지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한 낫 개소리에 불과하게 들릴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번지르르하게 한다 하여도 말 한 사람의 신뢰성이 떨어져 있다면 그 이야기는 한 낫 개소리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라 해서 다 복음으로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 타인에게 복음으로 들리게 할 수 있는 마력만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긍정적인 축면에서 바라본 이야기다.
사기꾼이 사기를 잘 칠 수 있는 이야기를 사기꾼 후보자에게 이야기함으로서 그 후보자가 감명을 받았다면 그것을 복음이라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사기 치는 법에 대해서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복음이 될는지 모르지만 여타 사람들에게는 毒音이 될 것이다.
어찌하였던 복음과 개소리는 어떤 자가 말을 했느냐에 관건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쉴 새 없이 복음과 개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
복음을 더 복음답게, 개소리도 정화하여 복음의 수준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복음이 더 많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처럼 맞이하는 만추의 주말이다.
타인의 잔소리도 새겨들으면 나의 인생에 조그만 보탬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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