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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이대로가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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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이대로가 좋은가
학문을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지식을 배워서 익힘”으로 나와 있다.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학문이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특성화고등학교나 기술관련 대학에서 지식도 가르치지만 기술 연마 쪽에도 상당한 정성을 기우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학문보다는 습득(習得)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인문계고등학교보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선호도가 떨어지는 현실이 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특성화고등학교에는 학문을 하러 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는 것은 같은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학문이 될 수도 있고 습득으로 판단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넓게 보았을 때 학교라는 곳은 학문을 갈고 닦는 공간임에는 이론에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우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배우고 익히는데 주안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다른 영역에서도 살펴볼 구석이 있는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학문을 공 맹자가 쓴 책을 훈장을 통해서 배우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물론 학문이라는 단어 자체가 공 맹자스러운 시대에 출현되었기에 더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학문을 갈고 닦기 위해서는 유능한 선생이 있어야 되고 그 선생의 말을 잘 듣고 외워서 머릿속에 오래 남는 과정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이라 볼 것이다.
과연 배우고 익히고 외우고 시험 치는 과정이 학문일 것인가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 비껴서 생각해 볼 시점도 되었다는 것이다.
학문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표기하면 ‘學問’으로 나타내게 된다.
여기서 ‘學’이라는 글자는 배우다는 개념이 들어갔다고 본다.
어떤 방식이던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이 있다면 그 글자를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는 그 뒤에 붙어 있는 ‘問’이라는 것이다.
이 ‘問’자는 한자 고유의 뜻은 ‘묻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問’이라는 글자만 놓고 보았을 경우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라기보다 물어 보는데 더 치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간다.
학문의 사전적 의미를 두루뭉술하게 배우고 익힌다는 것으로 국한되어 생각하지 말고 진정한 한자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단어에 사전적 의미로 알고 있으면 됐지 무슨 딴 소리가 많냐고 이야기할는지 모르지만 배움에 과정에 있어서 ‘學問’이 가지는 깊은 뜻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배움이 일어나는 것을 익힘으로 표현했는데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익힘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 또한 사전적 의미로 “서투르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해 보아 솜씨가 있게 하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반복학습을 통하여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개념이 ‘問’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問’은 물어 보다는 개념이다.
학문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히는 것 보다 지식을 배우고 물어 보는 과정이라 해야지만 제대로 된 해석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물어본다는 문자가 있는데 왜 익힘이라고 해석을 했는지 이해를 하기가 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바람에 진정한 학문이 왜곡되지 않았나 싶다.
학교 현장에서 학문이 제대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한자에 있는 ‘학문’의 뜻이 그대로 전달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학문이 뜻하는 순수한 의미를 재조명하여 진정한 학문이 일어날 수 있도록 틀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자에 표기된 학문의 뜻인 배우고 물어보는 교육이 제대로 학문이 가지는 단어의 뜻에 부합되는 처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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