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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漢詩이야기(138) .. 중국 강릉(江陵)관련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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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世讓(최종춘)
작성일 2016-08-10 08:17
댓글 1건
조회 1,417회
본문
옛날 강릉극장앞 삼문사(三文社) 서점에서 구입한 칠언당음(七言唐音) - 1969년판.
중국 형주(荊州)에 있는 강릉(江陵)이 경치가 좋은 모양이다. 이태백의 칠언절에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이라는 귀절이 있고,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
(赤壁賦)에도 "파형주 하강릉(破荊州 下江陵)..." 글귀가 있다.
당나라 왕건(王建)이 강릉(江陵)에 파견되어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시, 강릉사지여주(江陵使至汝州 - 강릉에 파견되었다가 여주에 이르러...)
回看巴路在雲間 [회간파로재운간] 강릉땅 파로에서 돌아보니 구름속에 있고
寒食離家麥熟還 [한식이가맥숙환] 한식날 집을 떠나서 보리 익을때 돌아어네
日暮數峰靑似染 [일모수봉청사염] 해 저물어 산들이 푸른색으로 물을 드린듯
商人說是汝州山 [상인설시여주산] 상인들이 말하기를 여주의 산이라 하네.
왕건(王建)이 767년생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이태백 사망(762년) 5년후에 태어났다.
당시 강릉(江陵)은 이태백이 지은 "조발백제채운간(朝發白帝彩雲間).. "시가 유명
하였기 王建도 이 시의 운(韻, 間. 還. 山)을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한식날 집을 떠나서 보리가 익을 무렵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고향과 가까운 汝州山이
보이니 그 기쁜 마음을 적고 있다.
사진의 책(七言唐音)은 당시(唐詩)중 칠언절만 약 200여수 실려 있다. 강릉 삼문사에
들려 책을 들어 정가표를 보니 당초 300원인데 고무인새겨 500원으로 찍어 놓았다.
이 책도 이제 50년이 가까이 되어가니 종이도 바래서 찢어질려고 한다.
중국 형주(荊州)에 있는 강릉(江陵)이 경치가 좋은 모양이다. 이태백의 칠언절에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이라는 귀절이 있고,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
(赤壁賦)에도 "파형주 하강릉(破荊州 下江陵)..." 글귀가 있다.
당나라 왕건(王建)이 강릉(江陵)에 파견되어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시, 강릉사지여주(江陵使至汝州 - 강릉에 파견되었다가 여주에 이르러...)
回看巴路在雲間 [회간파로재운간] 강릉땅 파로에서 돌아보니 구름속에 있고
寒食離家麥熟還 [한식이가맥숙환] 한식날 집을 떠나서 보리 익을때 돌아어네
日暮數峰靑似染 [일모수봉청사염] 해 저물어 산들이 푸른색으로 물을 드린듯
商人說是汝州山 [상인설시여주산] 상인들이 말하기를 여주의 산이라 하네.
왕건(王建)이 767년생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이태백 사망(762년) 5년후에 태어났다.
당시 강릉(江陵)은 이태백이 지은 "조발백제채운간(朝發白帝彩雲間).. "시가 유명
하였기 王建도 이 시의 운(韻, 間. 還. 山)을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한식날 집을 떠나서 보리가 익을 무렵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고향과 가까운 汝州山이
보이니 그 기쁜 마음을 적고 있다.
사진의 책(七言唐音)은 당시(唐詩)중 칠언절만 약 200여수 실려 있다. 강릉 삼문사에
들려 책을 들어 정가표를 보니 당초 300원인데 고무인새겨 500원으로 찍어 놓았다.
이 책도 이제 50년이 가까이 되어가니 종이도 바래서 찢어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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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택균님의 댓글
박택균 작성일
올봄 무한에서 버스로 장가계로 가는길
중간지역인 형주에서 잠시 쉬는데 이정표를 보니
옆에 강릉 표지판이 있더이다
반가운데 들어갈수도 없고 지형은 대체로 평지로
물이 맑지 못한것 같은데~~
거리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