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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이야기(160) .. 독립운동가 이설(李偰)의 선죽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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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世讓(최종춘) 작성일 2016-09-11 08:34 댓글 0건 조회 9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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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乙未)에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시해되는 乙未事變이 있었다. 이에 격분한
     이설(李偰 : 1850~1906)이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을 공격하랴다사 홍성군수의 배반으로 체포 된다.
     그가 법정에서 재판장의 심문에 답변한 내용은

     나는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힘이 모자라 도적을 치지 못하였다. 차마 군부(君父)가 당한 
     욕을 말한다면 의리상 살아 있을 수 없어서 춘추필법에 따라 붓으로라도 주륙하려는 뜻을 품고 바
     야흐로 장계를 올리고자 하였는데 체포되었다. 죽음이 있을 따름이요. 다른 할 말은 없소이다.

    이설은 곤장 80을 선고받고 고종의 특사로 풀려나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고향으로 갔다. 10년후 을사(乙巳勒約)으로 일본의 속국이 되니 그 다음해 상소를
    올리고 자결했다. 그가 정몽주(鄭夢周)의 충(忠)을 그리는 선죽교(善竹橋) 詩
              善竹橋邊血 [선죽교변혈]  선죽교에 흘린 피
              人悲我亦悲 [인비아역비]  사람들이 슬퍼하고 나도 슬퍼하네
              孤臣亡國後 [고신망국후]  외로운 신하 나라 망한 후
              不死竟何爲 [불사경하위]  죽지않고 살아 있은들 무슨 소용이리.
 
    이설(李偰)은 율곡 이이(李珥)의 학파를 이은 유학자로서 지행일체(知行一體)를
    중하게 여겼으니 조선말기 망국의 한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풀려고 노력하다가
    자결(自決)로 인생을 마감한다. 110년전의 까마득한 이야기. 바른 글을 쓰자.
    朴正熙대통령은 1963년, 故이설(李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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