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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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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9-02-12 10:49 댓글 0건 조회 9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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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웠던 사람이었나.

 

위 제목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시를 처음 접하면서 뭔 연탄재 타령이냐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던 지난날이 있었다.

우연치 않게 영월인가 출장을 갔다가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산책을 하고 있는데 어느 학교 담장에 위 싯귀가 붙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필이 가슴에 꽂혔다고 해야 할까, 호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위에 있는 사진자료이다.

 

문장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용이치 않은 문제라 본다.

위에 시로 보았을 때 특이한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엮느냐에 따라 진한 감동의 요소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글귀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다양하리라 보지만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부위는 분명히 다르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그 시를 쓴 분이 좌파의 성향이라 별로 우호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시를 쓰는데 우파면 어떻고 좌파면 어떻냐는 것이다.

물론 중도파면 이쪽저쪽 다 아우를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만 남의 생각까지 이념의 잣대를 들이 댄다는 것은 썩 바람직한 접근법은 아니라 본다.

무슨 파던 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쥐뿔도 없는 자가 남 잘되는데 재 뿌리는 이야기나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남을 긁어내려야 자신이 올라갈 수 있다는 단세포적 발상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좀 깊게 생각해야 할 구석이 바로 이런 것이라 본다.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해서 박수를 처 줄 정도의 넓은 가슴을 가지자가 결국은 더 잘 되는 길을 가리라 본다.

우리는 하찮은 것에 대해서는 너무 하찮게 대하는 습성이 배어 있다고 본다.

강한 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약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특이한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이 하찮은 연탄재 앞에서는 엄청 강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막 불 꺼진 따끈따끈한 연탄재를 본다면 발로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힘차게 한 번 걷어차고 싶은 충동은 있지만 연탄재의 속성상 재를 뒤집어 써야 한다는 불리함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위 제목에서 보듯 우리가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진한 감동을 줘 본 적 있느냐 이 말씀 같다.

딴에는 열심히 산다고 외치고 있지만 그 삶이 타인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준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니 타인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연탄이 자신을 불살라 인간을 얼어 죽지 않게 해 줄 정도의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런 적이 있었냐는 것이 주안점인 것 같다.

실제로 타인에게 감동은 주기는커녕 집에 있는 마누라나 자식, 혹은 부모에게 그런 감동을 준 적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 놓고 반성을 해 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연탄만도 못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탄만큼 타인을 위하여 한 순간만이라도 아낌없이 따뜻하게 해 준 적 있느냐는 것이다.

작자가 의도한 뜻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찮은 연탄재를 인간의 삶에 연결시켜 경종을 울리게 한 싯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탄만큼 타인에게 진하고 따뜻한 감동을 줄 수 있을는지 저의기 의심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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