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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30 - ‘鍾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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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시절, 학교 현관 처마끝에는 전란을 겪은 나라의 상징처럼 대포껍질로 만들어진 투박하기 짝이 없는 종이 매달려있었다. 선생님이 작은 망치로 종을 칠 때마다 작은 인생들은 송사리떼 처럼 이리로 저리로 몰려다니곤 했다.
코흘리개들의 함성과 몽당연필 하나 가지고도 다툼을 하던 추억까지도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추억의 종소리. 그러나 지금 그 풍경 그 소리는 아스라한 세월의 강을 건너 어디에서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그리움의 풍경 그리움의 소리가 되고 말았다.
고향의 시골들판 한 가운데에는 허름했지만 단층의 아담한 개척교회가 있었다. 시계나 라디오도 흔치않았던 시절, 서쪽으로부터 저녁노을이 물들어오기 시작하면 나지막한 종탑에서는 어김없이 종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밭을 가는 황소의 게으른 울음소리와 소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이따금씩 마을 찾아드는 엿장수 가위소리가 전부였던 그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종소리가 구릉을 거쳐 산 그림자를 타고 이 마을 저 골짜기 마다 번져나가면 주변의 풍경들조차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곤 했다. 교회라고는 크리스마스 때나 과자를 선물받기 위해 얼굴을 내미는 정도였지만 그 소리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안식과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저녁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소를 돌보던 산정에서 입술이 얼얼하도록 불어 제키던 하모니카를 비로소 내려놓고 들판을 내려다보면 농부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굽혔던 허리를 펴곤 했는데, 그 모습은 나중에 중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교과서에서 본 밀레의 만종에 크로즈업되면서 영원한 내 마음의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곳곳에 교회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치던 종소리가 기어이 소음공해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퇴출당하면서 교회종소리 역시 이제는 어쩌다가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리움의 소리가 되고 말았다.
이 혼돈의 세상에 잠시나마 마음을 정화시키고 하루의 고단함을 안식으로 인도 할 그 추억의 종소리, 성당과 교회들이 윤번을 정해 소음공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다시 부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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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그러고 보니,
학교 종이 땡땡땡~,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새벽 종이 울렸네~, 불국사의 종소리~,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
종소리에 관한 노래도 많고,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생각납니다.
설 연휴 잘 보내시고요! ^^ㅎ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종과 관련된 노래도 글도 풍경도 참 많군요.
선배님, 그런데 오늘 아침 친구가 이 글을 읽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얘긴즉슨 요즈음 새로지은 교회는 종탑이 있어도 종은 없답니다.
아~~ 슬퍼옵니다.
하지만 가족분들과 행복한 명절 보내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