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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履薄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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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9-01-24 08:55 댓글 0건 조회 9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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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如履薄氷

어떤 자가 이런 사자성어를 창안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예지와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여리박빙을 곧이곧대로 해석한다면 살얼음 판을 밟는 듯하다.”라는 개념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위태위태 하다고 표현해도 될 말을 굳이 살얼음판을 비유해서 단어를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다가오는 감정의 강도는 훨씬 더 큰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여리박빙이 우리의 뇌리에서 떨어지자 못하고 항상 붙어있는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두꺼운 철판 위를 당당하게 디디는 기분보다는 살얼음 판을 살살 걸어간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어갈 것이다.

그만큼 삶의 현장은 녹녹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여리박빙이 만들어졌을 무렵의 땅바닥은 단단했냐하면 그렇지도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굳은 땅만 밟고 다녀도 문제가 안 되던 시절 같으면 그런 말이 고안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도 사람 사는 세상에도 지금처럼 맘대로 땅을 밟고 살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언어의 구사 중에서 비유법이 의외로 많이 보인다.

표현상 가장 이해하기 쉽고 전달받는 사람도 실감나게 언어가 진화해 오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얼음도 단단하여 좀해 깨지지 않는 것이 있는 반면 조금만 하중이 강하게 내려와도 우직끈 깨 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실제로 여리박빙을 많이 경험했다.

지금처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시골 도로는 뚝방을 비롯하여 논 뚝 밭 뚝을 가리지 않았다.

바쁘면 남의 농작물도 밟으면서 지름길을 만들어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농작물이 없었기에 논 밭은 자연스럽게 지름길로 변했던 시절이 있었다.

평상시 얼지 않았던 논이 얼 무렵이 되면 그 또한 지름길로 훌륭하게 써 먹었다.

문제는 단단히 얼었을 경우에는 좋겠지만 살얼음이 언 가운데 함부로 다니다 보면 얼음이 깨져서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험을 해 본 것을 토대로 인생에 대입을 시켜보면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다.

함부로 얼음판을 걷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역정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다.

경거망동하다보면 살얼음 판 깨 지듯 엄한 수렁에 빠질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여리박빙의 생활에서 벗어날 날이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숙명이라면 군소리 없이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도 조심조심, 더 조신하게 살아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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