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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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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옛 생각이 나서 일기장을 뒤적이곤 한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지금 책장으로 가득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실로 불에 태워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말도 되지 않는 글 나부랭이, 문법은 고사하고 문맥이 맞지도 않아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건지 주제도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내 소년기와 청장년기의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 같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만다. 먼지가 올라 뿌옇게 되면 털어서 다시 쌓아 놓길 반복 하면서.
그 중에 노랗게 변색된 일기장을 빼내 보았다.
50년도 더 된 고등학생 때의 노트다.
그 노트를 펼치는 순간 노트에서 종이 한 장이 방바닥에 떨어져 펄럭인다.
직감으로 편지인 것 같아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아버지의 편지였다. 옛 사람들의 필체가 정겹게 다가왔다.
그때 아버지는 객지에 나가 계셨고 고향의 우리들에겐 한달에 한번씩 오셨었다.
아버지는 객지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편지를 많이 쓰셨고 우리들은
그 편지를 읽으면서 아버지를 본듯이 반가워 했었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우체부가 전해주는 편지는 그야말로 제일 반가운 일이었다.
" 家兒보아라...."
첫줄에 이렇게 시작된 아버지의 글이었다.
“家兒” 집안의 아이들이란 뜻일게다.
지금의 우리들이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면 “아들아 보아라” 라고 쓸 것 같은데
그 당시는 그게 더 어울렸었나 보다.
“학업에 열중해서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라”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나에게 기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 부담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혼자 농삿일 하느라 힘이 드니 너희들이 많이 도와 드려라”
엄마를 살뜰이 생각하는 모습에선 부부간의 정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할머니가 연로해서 움직이는게 굼뜨더라도 너희들이 잘 받들어 모셔야지”
그때는 아들이 노모를 생각해서 하는 말씀이겠거니 그리 생각했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노모를 근심하는 아들의 노심초사가 읽힌다.
아버지의 편지는 이렇게 매번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곤 했었다.
한 세대가 지나고 지금의 내가 아버지 보다 더 많아진 나이에
나는 아들들 한테 살뜰히 편지 한번 써 본 일이 있던가
아니 편지는 고사하고 다정스레 대화라도 한번 했던가 자성해 본다.
잠시 눈을 부쳤다가 깨어나 보니 50년이나 지났다.
시간은 쉼없이 흘러가는 강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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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대목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머리 속에 있다하여도 그것이 밖으로 표출이 안된다면 별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50년전 나와 관련된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한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한 해가 지나간 시점에서 미래도 중요하겠지만 과거 또한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멋있고 행복한 인생이 우리 앞에 다가오길 열망합니다.
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불효자인 저도 부모님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을
그 당시에는 잘 이해 못했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그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살아 생전에 좀 더 살뜰이 보살펴 드려야 하는데
왜 그렇게 못했는지. 늘 가슴에 후회 앉고 뉘우치고 있습니다.
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先大人의 편지로 보아 물론 물려받은 DNA도 있었겠으나
문장력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고
일기를 쓰면서 훈련되고 가다듬어 차곡차곡 이룩된
노력의 결정체였습니다.
님은 지금도 진심을 담은 글로 소통하고 있습니다.^^ㅎ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家兒.
저도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지만
아들을 향한 정겨움이 듬뿍 묻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