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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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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4-19 08:14 댓글 0건 조회 8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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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변


   시대가 흐르면서 상전벽해가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세월의 흐름을 빗겨 가는 곳도 있는 것이 세상사이다. 세월의 흐름을 가장 실감나게 느끼는 것이 자신의 나이가 아닐까 싶다. 지금 내 나이는 남의 나이를 덮어쓰기 한 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심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산술적 나이는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던 자연이던 세월 앞에서 자유스러운 존재는 하나도 없으리라 본다.

 

   지난 3월 중순 어느 주말경인가 경남 진주에 대학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갔던 적이 있었다. 진주로 가는 길에는 친구 차에 빈대 붙어서 갔었는데 올 때에는 따로 오게 되었다. 그 모임 시간이 토요일 점심때를 기준으로 잡았기에 친구들 얼굴이나 보고 돌아온다고 계획하고 떠났다. 산천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개나리와 목련이 꽃을 피우면서 봄 향연을 맘껏 연출하고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데다가 적당히 흐려있어서 드라이브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장거리임에 운전을 직접하지 않고 빈대 붙어 가는 터이라 운전에 대한 부담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진주의 명물이야 많겠지만 그 중에 촉석루가 백미러 아닐까 싶다. 그날 모임도 촉석루 주차장에서부터 출발이 되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진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촉석루로 올라가는 방향에서 대규모 토목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과거에 그 자리는 장어구이 집으로 유명하던 곳이었는데 죄다 헐리고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었다. 그 쪽을 공원 및 체계적인 관광시설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 대대적인 공사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필자의 아들이 공군에 입대를 하면서 훈련을 여기서 받았었다. 그때에는 혁신도시 공사로 인하여 진주 북쪽이 엄청 개발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빌딩이 다 올라 간 듯 한 느낌이 들어갔다.

 

   친구들과 진주 육회비빔밥과 함께 진주 명물 막걸리를 몇 잔 기울이면서 오찬을 즐겼다. 모처럼 만나 회포는 풀지 못했지만 얼굴이라도 제대로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식사 후 촉석루 산책을 하게 되었다. 촉석루 안은 온갖 이른 봄꽃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이 죄다 촉석루로 모여 든 듯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그 대열에 끼어서 진주성을 한 바퀴 돌고 필자는 이내 강릉으로 오기 위하여 친구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터미널에 오니까 대구로 가는 버스가 이내 연결되었다.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버스는 이미 대구까지 와 있었다. 거기서 포항행 버스표를 끊은 후 한 참 기다리다 보니 버스가 왔다. 대구서 포항까지는 고속도로가 나 있는지라 금세 포항까지 왔는데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거기서 강릉으로 와야 하는데 밤 11시인가에 떠나는 심야버스 밖에 없단다. 할 수 없이 울진까지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울진에 가면 대구나 부산, 경주 등에서 오는 버스가 강릉까지 연결 될 줄 알았다. 포항에서 울진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울진에 내리자마자 강릉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는데 막차가 이미 출발한 다음이었다.

 

   꼼짝 없이 울진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버스 시간표를 보니 다음날 6:30분 강릉행 첫 완행버스가 있었다. 정신없이 버스에 시달리다 보니 배도 고프고 이제는 더 이상 갈 수 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맥이 쭉 풀렸다. 대신 시간이 널널하게 남았다는 생각이 더 든다. 요기를 하기 위해서 시내 쪽으로 쭉 걸었다. 그날의 저녁 날씨는 온화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분주하고 쫓기던 마음도 내려놓고 나니 더 한층 자유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어느 정도 흘렀다. 주변에 식당이라야 고만고만한게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울진도 경상도임으로 음식의 맛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 먹어본 음식 맛은 결국 경상도 맛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계획에도 없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하게 된 것도 하나의 팔자겠거니 생각하고 느긋한 맘으로 숙소를 찾았다. 아니 찾을 필요까지도 없었다. 어디 가도 터미널근처는 숙소가 발달했다는 것이 이 울진에서도 빗나가지는 않는다. 아침 첫 버스로 강릉까지 가야하기에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골 여관의 맛이 저절로 나는 집이었다. 아침 일찍 떠나기 위해서 해장을 하기에는 좀 곤란할 것 같아서 아침에 먹을 빵과 우유 그리고 견과류와 과일을 좀 준비했었다. 느닷없이 이루어진 울진의 하룻밤은 이렇게 하여 흘러갔다.

 

   아침 6시에 스마트폰의 알람이 울리게끔 맞추어 놓았다. 남의 곳에서 생소하게 잠자리를 맞이한 덕분에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에 이미 눈이 떨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를 먹으면서 새벽잠이 점점 줄어드는 판에 잠자리까지 바꿔졌으니까 더 빨리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라 본다. 엊저녁의 부드러운 공기가 아침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울진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지만 매연이 나오는 시설이 아님으로 방사선 물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공기하나는 깨끗한 것 같다. 날씨도 맑아서 더 한 층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릉행 6시 반 버스에 올랐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더 조용한 느낌이다. 승객도 몇 명 되지 않는다. 거의 전세버스 수준으로 탑승 인원이 적었다. 완행버스인지라 7번국도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꼬불꼬불한 시골길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니 시골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골길이 산중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모처럼 앞에 앉은지라 도로에 이정표가 그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정확한 지명은 모르겠으니 첫 기착지에 잠시 섰다가 다시 해변 쪽으로 가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가 싶었는데 마침 아침 해 뜨는 장면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해맞이를 하는 것 보다 더 정확하게 일출시간에 맞추어 버스가 해변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해변이 다름 아닌 죽변인 것이다. 과거에 죽변으로 스쳐지나간 경우는 있었으리라 본다. 하지만 죽변의 초입부터 끝까지 버스로 투어를 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본다. 내 스스로가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몰아주는 차를 타고 유유자적하게 해맞이와 죽변항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죽변은 옛날 소시적에 라디오가 매체에 주종을 이루던 시절에 기상개황이나 음악방송에서 죽변에 아무개가 누구에게 띄운다는 등의 멘트가 엄청 많이 나왔던 터이라 귀에 아주 많이 익은 지명 중에 하나로 기억된다. 그렇게 라디오 매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다는 것은 그 지역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죽변은 동해안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수산물이 잘 잡히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사방에 인공항구가 개발되면서 큰 항구 쪽으로 배가 다 가버렸지만 과거 토목공사의 기술이 일천하던 시절에는 천연항구가 각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과거 죽변에서 많이 잡혔던 어물로는 오징어, 도루묵, 가자미, 앵미리, 게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명성이 경상도는 물론 강원도까지도 미쳤다는 것이다. 아니 아주 먼 예전에는 울진 자체가 강원도 땅이었으니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친근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된 곳이다. 과거 어업은 어족이 풍부하고 천연항이 발달한 곳에서 이루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많은 어획이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끓으면서 이 지역이 번성했다는 것이다. 마치 강원도 삼척의 도계나 태백에 철암, 상장 같은 곳에서 석탄이 한창 나올 때 엄청난 인구를 부양했던 시절을 떠 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죽변의 유래는 명칭을 풀어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은 해변이나 강변과 같이 변두리의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해변이 그만큼 발달한 곳이라 보면 된다. 그런데 그 앞에 이 붙어 있다. 울진만 해도 강원도 해변보다는 훨씬 남쪽에 있기 때문에 식생자체가 온대 남부 식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 중에서 대나무가 많아서 자를 붙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국 죽변은 대나무가 많으면서 천연항이 발달한 해변지역이라 보면 어느 정도 답은 나오리라 본다. 특히 대나무가 많다보니 겨울철 죽변항은 사군자의 하나인 대나무로 둘러 쌓여 항구와 매치가 되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항구로 자리매김 되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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