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페이지 정보
본문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아주 오래 전, 모 TV드라마에서 제목과 같은 타이틀로 방송되었던 적 있었다.
보통 드라마의 소재가 얽히고설킬 수 있는 도시 사람들의 삶을 그렸던 시대상황을 너머 농촌을 배경으로 만들어 졌던 드라마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당시에는 많은 드라마도 있었지만 방송사가 지금처럼 이렇게 많지 않았기에 채널을 돌려가면서 본다면 모든 방송의 드라마를 다 볼 수 있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드라마에 내성이 생긴 바람에 제목만 보아도 어떤 장르에 어떤 방식으로 흘러 어떻게 끝날 것이라는 것이 감이 잡힐 정도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매 방송분 마다 새록새록한 맛이 나고 그 다음 방송이 간절히 기다려지던 시절이었다.
특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라는 드라마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은 당시에 우리의 삶과 같은 환경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출연진 중에서 아직까지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당시 그 드라마에서 연기했던 모습이 오버렙되기도 한다.
그 방송이 나오던 시절, 필자는 농고에서 선생 생활을 했었다.
그러지 않아도 재미없던 수업시간에 숨통을 틔게 하는 순간은 수업과 관련이 별로 없는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한참 교과서를 가지고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배우는 아이들은 흥미가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분위기를 환전시키기 위하여 교과서와 관련 없는 화두를 하나 던졌다.
그 화두 중 하나가 당시에 뜨던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였다.
드라마 소재 자체가 농촌이었던 관계로 교과와도 매치가 되어 그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수업에 한 꼭지로 부각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상당히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되고 말았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 하나가 기상천외한 질문을 내게 던진 것이다.
교직생활에서 수업이 생명이라는 것 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교사가 수업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울 때가 자신의 자존감이라던가. 능력이 격하될 경우가 대다수다.
해서 과거 우리를 가르치던 선생님 중에서 일류급 수업을 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혹, 궁금해서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난리가 날 정도로 싫어 하셨던 분들도 계셨던 기억이 난다.
실제 수업이 재미있게 이루어지려면 질문과 대답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교실 안에 환경은 지금도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질문에 그렇게 격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질문에 대한 대답만 잘 해 주어도 존경은 모르지만 수업은 잘 하는 선생님으로 통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가르치는 선생님도 과거 학생 시절에 질문을 해 본 적도 없고 혹시 질문을 하였다하여도 매끈하게 대답해 주는 경우를 만이 보지 못해서 인지도 모른다.
배우지 않았으니 어떤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원초적으로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시 수업시간에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이야기로 돌아간다.
내게 질문을 한 학생의 이름 이니셜을 밝힌다면 1997~8년도에 다녔던 ‘K. N. P’이라는 친구다.
그 친구 왈 “선생님, 대추나무에 사랑 걸린 것 보셨나요?”라는 질문이었다.
당시에 그 질문이 내겐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충격 중 하나는 그런 질문을 한 그 학생의 기발한 발상이었고 또 하나는 어떻게 그 학생이 던진 질문의 취지에 맞는 답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당시에 필자가 어떻게 대답해 주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잘은 모르지만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 어떤 학생에게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새로운 발상에서 대답을 해 주지 않았을까 싶다.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학생들이 원하는 모든 내용을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렇다고 대답이 질문의 핀트와 어긋난다면 질문하는 학생은 자연스럽게 답하는 선생에 대해서 신뢰성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때 어떻게 답하는 것이 질문자나 답하는 자가 모두 만족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즉답식으로 해야지만 확실한 대처법이라 생각할 것이다.
필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즉답이 간결하고 화끈해서 좋기는 좋은데 질문자의 의도와 다른 각도에서 답이 나왔을 때 질문자는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물론 간단명료하게 답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즉답을 해야겠지만 위에 질문처럼 추상적인 답을 해야 할 경우에는 ‘재 질문’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재 질문을 할 경우 상당히 고차원적으로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냥 왜 그런 질문을 했냐고 다시 물어 본다면 질문한 학생은 그냥 머쓱해 버릴 것이다.
질문자에게 재 질문은 정교하게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상적인 질문이다 대답하기 어려운 내용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뭉개버리는 것은 고수의 선생이 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본다면 재 질문을 통하여 질문자의 의도를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도 능력 있는 교사가 해야 할 몫이라 본다.
다음으로 이런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은 교사가 내리는 것 보나 주변에 친구들에게 다시 물어 본 다음 동료학생들이 의견을 말할 기회를 준다.
어느 정도 학생들 간에 의견을 들어본 다음 교사가 정리해 주는 방식이 더 원만하리라 본다.
이런 방식을 택한다면 수업도 교사일변도에서 학생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 효과도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아주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교사가 그 업을 다 뒤집어쓰지 말고 공통의 숙제를 내 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음 시간에 그것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토론해 본다면 그야말로 공감이 넘치는 수업이 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우리는 관념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수업에서도 너무 딱딱하고 단순하고 접근하는 바람에 배우는 학생들의 일부만 공감하는 교실이 되기 십상인 게 현실인 것이다.
질문 하나를 통하여 교실수업을 공감과 소통, 그리고 솔로몬 같은 해결책을 내려 주는 기회를 가질 수 도 있다는 것이다.
- 이전글역지사지(易地思之) 19.09.23
- 다음글빈자리 19.09.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