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장미의 넝쿨
페이지 정보
본문
장미의 넝쿨
봄 가고 여름 나는데
그 붉은 핏방울 아직도 살아 흐르듯 하여
가시에 찔린 혈흔
차마 못 지웠노라
가시 돋은 육신의 행렬 푸른 넝쿨로 감싸 안고
비오는 날이나 해질녘에
그 누군가를 흠모했던 마른 기억을 주섬거리다
문뜩 떠오른 듯 붉디붉었던 그 열정을 그리워했노라
사랑했다는 것은
꽃과 바람을 흠모했던 실낙원의 죄명이다
해와 달 흘러가고 그 죄명 벗던 날
바람의 행적과 꽃의 행방을 잊기로 했다
생의 어느 한 곳도 푸르지 않았고 붉지 않았던 날 있었느뇨
들에 꽃피는 날 산에 꽃피고
산 위에 바람 불던 날 팔랑대던
내 안의 나뭇잎들
사람아!
사랑했다는 것은
일만 번 계절이 오고 가도 다시 피지 않을 꽃이 아닌가
영겁의 시간 속에 떨어뜨린 붉디붉은
핏방울 아닌가.
내가 소년일 때 어느 청순한 소녀를 사랑했다.
그 소녀가 숙녀가 되어 내 아내가 되었고
그 숙녀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막내 아이 두돌 맞던 전 날 그 엄마는 꽃다운 청춘을 안고 눈을 감았다.
."하나님 나의 남편은 당신의 뜻을 따라 착하게 살고자 노력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이제 그 분을 이 세상에 두고 저는 떠납니다.
나의 남편을 하나님께 맡기오니 지켜 주소서"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고별 인사는 그러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영겁의 시간 속에 떨어진 그녀의 핏방울
살아있듯 선명한 그 핏방울
오늘도 여기에 나 있건만
분명히 있어야할 그 핏방울
지금
그 어디에 있음인가
천년이 가도 또다시 피어나지 못할
내 안의 영겁에 피 토하고 쓰러진 꽃이여!
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
나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떠난 이여!
- 이전글수화상극 19.09.02
- 다음글미끄러져 가듯 가는 시간 19.08.28
댓글목록
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첫 글부터 뭉클한채 다 읽고 나니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창밖에 핀 장미꽃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제 장미꽃은 피고 지는 게 아니라 이미 당신의 가슴속에
피어있습니다.
적어도 당신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겁니다. ^*^
김윤기님의 댓글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영겁의 어디쯤에서 한 번쯤 만나게 된다면 --- 막연한 기대감도 없진 않습니다.
답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너무나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녀의 핏방울"로 오롯이 빛나는 시인의 詩語
더욱 빛을 발산할 것이라 봅니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김윤기님의 댓글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情이란 무엇인지
세월은 흘러갔어도 쉽게 퇴색하지 않는 마음 하나 한구석에 남아있나 봅니다.
답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가슴이 짠~해옵니다.
장미, 그 피빛보다 붉은 사유를 알 것 같습니다.
김윤기님의 댓글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죽어 곷으로 태어났을 것 같은 -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관심이지만 막연히 믿게 되는 것이 상정이가 봅니다.
답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