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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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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
평양감사를 지금으로 말한다면 도지사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평양은 북한에 있는 관계로 우리의 국토이지만 가 볼 수 도 없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
평양감사는커녕 발도 디딜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우리가 할 말이 무엇이겠는가.
우리와 생각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한 민족이자 한 핏줄인 것이다.
조금만 배려하고 양보하고 이해한다면 충분히 오갈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을 그저 때려잡을 대상으로만 본다면 그들 또한 우리를 타도의 대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본다.
어찌하였던 그렇게 좋다는 평양감사를 해 보기 위하여 평양으로 가야하는데 원초적으로 갈 길이 막힌 상황이고 보면 그 안타까움은 곱배기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평양감사가 얼마나 좋길래 그런 말이 지금도 통용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마 조선시대에 나 온 말 같은데 당시에 쓰던 표현이 달나라에 날아갈 수 있는 요즘에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만큼 언어의 표현은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어떤 뉘앙스가 있느냐에 따라 살아날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이야기는 평양감사 정도 되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보직이다라고 바꾸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감사를 해 보는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상의 세계에서 해 보고 싶은 직책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평양감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고 본다.
실제로 평양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재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평양감사라는 자리 자체가 없으니까 말이다.
평양감사는 없어졌지만 상징적으로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본다.
어떻게 하면 평양감사와 같은 누구나 동경하는 자리에 들어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볼 것인가가 이 시대에 던져준 화두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염원하는 자리가 이 시대의 평양감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밥 벌어 먹기 위하여 연연하는 세계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용이치 않다고 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내키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세월을 쪼개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가 평양감사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면 이 또한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이놈에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고 죄다 평양감사와는 아주 동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 본다.
평양감사의 자리를 만드냐 아니면 그와 반대편에서 죽을 고생을 하느냐는 우리들 마음이나 자세에 따라 달렸다고 본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자리가 평양감사처럼 되려고 노력을 한다면 훗날 평양감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평양감사의 자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본다.
평양감사보다 더 가치있고 흥미로운 자리도 분명히 존재하리라 본다.
어쩌면 신기루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평양감사란 뜬 구름 속에 자리를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잘 만 하면 죽기 전에 평양감사 못지않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실날같은 희망은 있다고 본다.
노력과 운빨 만 따라 준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지만 이 두 가지가 호락호락하게 우리에게 오지 않는데서 깊은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어서 그만 두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이 넘치는 사람일 것인가를 상상이라도 해 보자.
주말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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