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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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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석연2 작성일 2019-06-19 11:04 댓글 1건 조회 9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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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더워진다. 유월 초순인데도 여름날씨 같다. 움직여야 될 것 같다. 초록봉 둘레길을 돌아오기로 마음 먹고 발걸음을 내 디뎠다. 초록봉 둘레길이라야 10km 남짓 되는 거리이니 굳이 간식이나 음용수는 필요치 않을 것 같아 맨몸으로 산길로 들어섰다.

평평한 산길, 쭉쭉 뻗은 활엽수림속을 걸을수 있다는것만도 자연이 주는 특혜 이리라.
평지가 끝나고 오르막 산길이 약간 버겁다. 키큰 활엽수는 보이지 않고 작달막한 덤불나무가
지천이다
. 더 더운 느낌이다. 간간이 소나무 사이로 올라오는 냉기가 더위를 식혀준다.
갑자기 목이 마르다. 평소 물을 잘 먹지 않아 물도 챙겨오지 않았는데 하필 오늘에랴.

주변엔 샘물같은 것은 아예 없다. 마사토 경사길에 샘이 솟아나길 바라는 내가 더 우습다.
덤부사리 숲속에 언 듯 동그랗고 파란열매가 보인다. 퉁갈이다. 망개잎에 싼 망개떡이 그렇게 먹고싶던 그 망개나무에 열린 열매가 바로 퉁갈이다. 이즈음의 파랗고 동그란 열매가 달렸을땐 퉁갈로 불렀고 가을 철 빨갛게 익었을땐 고향에서 어렸을 때 깜바구라고 불렀던 바로 그 퉁갈이다.

복스럽게 한군데 모여 맺힌 퉁갈을 왼손받쳐 오른손으로 한웅큼 훑어 따서 입안에 넣었다. 와싹 씹어 국물을 넘긴다. 떨떠름 하지만 한모금 물을 마신 듯 시원하다

그랬다. 이즈음이겠다. 논에 모를 심고 활착을 기다리는 동안은 별 할 일이 없어 산에

나무하러 갔었다. 친구 상현이는 어렸을때부터 해온 나무하기가 이제 갖 귀향하여 시골생활을 하는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완벽했다. 예닐곱살 먹은 시골 소년이 뭐 그렇게 일을 잘 하랴 싶지만 타고난 기질인가 싶을만큼 어른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곤했다. 퍼런 소나무 가지를 낫으로 베어 단을 만들고 한단 두단 모아 놓았다가 지게 밧줄 길게 풀어 소나무단을 묶는다. 한번 끌어당겨 묶고 발로 추스려 다시 묶고 그래도 시원치 않으면 아예 밧줄을 풀어 처음부터 다시 묶곤 했던 친구 상현이는 내 나무하기 스승이었다. 나무짐만 보면 확연이 차이가 났다. 상현이는 나무 끝을 가지런하게 추스려 쌓아 보기도 좋은데 난 까치집같이 엉성하게 나무를 얹어서 그것도 옆으로 넘어갈 듯 지고 다녔으니 동네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르겠다.

산길은 멀고 지게짐은 무거워지고 꼭 중간 쉼터에서 쉬었다 가곤 했다. 상현이는 한달음에 집까지 갈수 있었지만 나를 위한 배려로 나와 함께 쉬었다 가곤 했다. 쉼터엔 퉁갈나무가 지천이었다. 목도 축이고 숨도 가라 앉힐 요량으로 한웅큼 따서 상현이한테 건네면 흰이빨 드러내며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은 뭘 뜻한 것이었을까?

한고개 넘어 순복이가 살았다. 순복이네 집은 소를 두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아침 꼴 베기는 순복이 담당이었던 모양인지 아침마다 꼴 바구니를 들고 논숨으로

달려가곤 했다. 논숨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사그작사그작 꼴을 베고난 후에 보면

기계로 벤 듯 남은 풀포기 높이가 자로 잰 듯 똑 같다. 아이들 머리를 깍은 것처럼.

여기저기 베어 두었던 꼴 무더기는 뒤로가며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겨졌고 넘쳐나는

꼴은 꼭꼭눌러 긴 낫으로 한번에 척 꽂아버리면 절대 흘러넘치는 일이 없다.

어찌 저리도 감칠맛 나게 일을 하랴 싶어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곤했다.

그래 그런 잡다한 것 모두 기술이리라. 엄밀히 말하면 농삿일의 달통한 기능.

수십년 동안 장치산업의 기능만으로 먹고 산 내 이력은 이제 공장자동화라는

거대한 문명속으로 사그라들고 옛 추억의 일부가 되고 있다.

고향에서 남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을 했던 그네들도 이제 옛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그 옛날의 하루를 회상하며 씁쓰레 웃고 있으리라.

모두가 그때를 그리며 이젠 기억속의 한페이지 일테지만 나이들어 가면서 그런 추억조차

없었더라면 살아가는데 얼마나 황폐한 생각이 들까?

고향의 친구 생각으로 훈훈했던 우정을 음미하고 재넘어 순복이 생각으로 혹시 모를

어렸을때의 연애감정이 되살아난다면 이밥에 쇠고기만 먹다가 토장국을 먹을때처럼

가슴 훈훈하지 않을까

고향의 옛 친구들이 눈물나도록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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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유년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아름다운 에세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