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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그 자체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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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그 자체가 자산
고민, 고심, 괴로움, 아픔, 고독, 이별, 슬픔, 절망, 낙담, 쓰라림, 좌절 등 우리 인간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는 감정의 단어이다.
인간에게 비우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이상향의 세계인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세계를 가 봤다는 사람은 무성한 썰로만 이어졌지 실제로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인간에게 비우호적인 감정을 가급적 줄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찰을 통하여 또 어떤 사람은 조신하게 사는 삶을 통하여, 또 어떤 사람은 종교를 의지하는 등 다방면으로 좀 더 우호적 삶을 살아가려도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다.
싫던 좋던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본이 아니게 비우호적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운명적으로 내게 오는 비우호적 조건을 배척한다고 해서 달아나는 게 아니라 본다.
내게 온 것은 내가 감수하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하여도 그 이면에는 반드시 마가 끼게 돼 있는 것이 인생사이자 세상사인 것이다.
좋은 일만 계속 일어나는 인생은 없으리라 본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측면의 일과 비우호적 측면의 일들이 적절히 공존하는 세상에서 그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엮어 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비우호적 일이 내게 왔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팽개칠 수 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그것을 어떻게 잘 달래보느냐가 더 절실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같은 일이지만 바라보고 처리하는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내게 다가왔다 하여도 그 일을 잘 처리하면 그런 유형의 일에서는 내공이라는 선물도 주어지리라 본다.
온실 안에 화초라던가 공주님처럼 키워진 아이들은 험한 세파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법이다.
역으로 표현한다면 험한 곳에서 세파와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온실 안에 화초라던가 공주님은 이 세상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분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다수의 식물이나 인간은 험악한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신세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식물의 경우 어려움이 닥치면 스스로 경계하고 방어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식물 재배 용어상 ‘하드닝’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에 적응하는 능력이 신장된다는 이론이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인 만큼 식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험한 환경에 트레이닝이 잘 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좀 더 수월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이성과 판단이라는 독특한 능력을 가졌기에 그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의 척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쉬운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본다.
특정인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특정 능력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까지에 많은 고충과 노력이 수반되었으리라 본다.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비우호적 조건을 어떻게 우호적으로 전환을 시키느냐가 자신의 능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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