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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길을 묻다 143 -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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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다가 말고 무작정 핸들을 돌려 바다를 향해 달려 본적이 있습니까?
비 오는 화요일, 한 송이 장미꽃을 사 본적이 있습니까?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배낭 하나 걸머메고 훌쩍 열차에 올라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것들을 딱히 낭만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낭만이라는 말의 뜻에는 일탈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영일만 친구’를 부른 가객 최백호의 몇 안 되는 힛트곡 중 ‘낭만에 대하여’의 노랫말의 배경은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입니다.
그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7,80년대의 다방에는 계란 노른자위를 동동 띄운 모닝커피가 있었고, 새빨간 립스틱에 그야말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보내는 질펀한 농담도 있었습니다.
단골 노친네들은 연신 눈웃음을 남발하는 마담에게 요즈음 그랬다가는 성추행범으로 잡혀 징역살이를 해야 할 정도의 手作業(?)을 하곤 했는데 잡혀줄 듯 말 듯 그런 수작을 잘 요리하는 것이 또한 마담의 역할이었습니다.
다방에는 마담을 보조하는 ‘레지(register의 일본식 준말)’라고 불리던 앳된 아가씨들은 커피가 담긴 보온병을 쟁반에 얹어 보자기에 싸들고 꿀벌처럼 부지런히 출장을 다니곤 했지요. 그런데 출장시간이 오래 경과할 경우는 당시 한잔에 100원 안팎을 하던 커피값에 오백원이나 천원짜리 팁을 한 장 얹어 주어야 했으니 다방문화의 내면에는 일상적 경제질서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궂은비 내리는 날, 슬픈 섹스폰 소리나 도라지위스키는 없을지라도 저 멀리 등대가 바라다 보이고 뱃고동소리가 들려오는 어촌의 한적한 다방으로 걸음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어쩌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 우연하게도 정말 우연하게도 그 다방 한 구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다소곳이 앉아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낭만은 무슨 얼어 죽을 낭만이냐.”고 투덜거리며 살아왔던 참 불행한 세대, 그러면서도 어쩌다가 은근 슬쩍 일탈을 즐겼던 그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아 ~~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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