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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42 - ‘나는 따지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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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밤이면 등잔불을 켜던 산간오지였지만 부모 잘 만난 덕에 또래보다 일찍 문자를 익힐 수 있었다.
라디오도 tv도 없던 시절, 그나마 외부의 소식을 접하는 수단은 신문밖에 없었는데 윗동네 아랫동네를 망라하고 신문을 구독했던 집은 우리집 뿐이었다. 우편배달부가 매일 신문을 배달을 해주던 시절이라 배달된 신문을 신주단지 모시듯 남들의 손을 타지 않는 선반위에 올려놓아 아버지가 보시도록 챙겨두는 일은 막내인 나의 몫이었다.
신문의 제호가 한반도 지도 형상위에 한자로 찍혀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익힌 문자는 ‘朝ㅇ日報’라는 한자였다. 아버지는 다섯 살 어린 것을 무릎에 앉히고 제호를 한자 한자 짚어가며 훈독(訓讀)을 해주셨는데 상형문자여서였던가 나는 그렇게 익힌 한자 덕으로 신문을 읽게 되어 또래보다 일찍 세상의 문명과 마주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여섯 살이던 해에 집 인근에 서당이 열리자 아버지는 아예 그곳에 입문을 시켜주셨는데 어떤 사건이 있은 이후 꼼짝없이 1년간 한문수학을 하게된다.
천자문에 나오는 첫 구절은 누구나 알듯이 '天地玄黃’이다. 그런데 훈장님은 ‘하늘天 따地’라고 가르침을 주셨는데 나는 발칙하게도 ‘아니 왜 ‘땅’을 ‘따’라고 읽느냐‘ 고 훈장님께 따지듯 물었다. 그것도 입학 첫날에 말이다.
그러자 훈장님은 ‘地’字가 땅을 뜻하기는 하지만 네 글자를 이어서 읽을 때는 ‘따’라고 읽는다고 수차례 강조해 말씀했지만 서당에 다니기 싫어 빌미를 찾던 이 철딱서니 없고 맹랑한 꼬맹이는 그날 ‘땅’을 ‘따’로 읽는 이상한 훈장이 마을에 왔다며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고 서당에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고 떼를 부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훈장님께 이 같은 일을 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일 후, 싸리나무가지를 다듬어 만든 회초리를 손에서 놓은 적 없는 그 엄한 훈장님은 뭔가 마뜩찮은 듯 몇 차례 헛기침에 이어 턱수염을 수차례 쓰다듬더니 당신은 오랜 습관 때문에 ‘따지’라고 하더라도 너는 네가 읽고 싶은 대로 ‘땅 地’라고 읽어도 된다고 특별하게 허락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악동의 생떼였던 셈이다.
나중에 철이 조금 들어서야 그 훈장님은 유교의 경전 중에 하나인 周易을 통달하여 귀신을 불러낸다고 할 만큼 학식이 높았던 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못이기는 체 학자로서의 체면을 접어주셨던 훈장님. "이제는 더 이상 개뿔도 모르면서 시건방지게 땅지니 따지니 하고 따지지 않겠습니다." 허기야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다만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게 영면하시기만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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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역설적으로 훌륭한 제가 있기에 훈장이 더 빚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이 멋있고 잘 가르쳐야 제자들이 잘 된다고 하였는데
그런 사고 방식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고,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이 똘똘해야 더 맛깔스런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멋있는 제자를 볼 수 있는 능력과 그 제자를 잘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생이
유능한 스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글 감동있게 잘 보았습니다.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스승의 날이 다가오기에 까마득한 유년의 기억을 되짚어봤습니다.
형보다 나은 아우없다고 스승만한 제자가 있겠습니까.
세태에 따라 빛이 많이 바랬지만 스승의 날을 자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