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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비름골 복사꽃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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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석연2 작성일 2019-04-20 06:35 댓글 1건 조회 9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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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이 더 푸르게 보이던 날

흰구름이 간간이 떠 다니던 날, 

두타산엔 간밤에 내린 눈으로 봉우리마다 하얗게 쌓여 봄날을 쫓아 버린 날

뇌비름의 어원을 찾아 뇌비름골로 떠났다.


뇌비름골은 동해시 삼흥동 신흥천 서쪽편에 있는 골 이름으로 두타산을 향해 길다랗게 이어진 골짜기이다. 

뇌비름골은 옛부터 노비음(鷺飛音)이라 불렀고 그 노비음이 노비름 뇌비름으로 바뀌어졌다고 한다

노비음, 백로가 앉아 쉬다가 먹이를 찾아 날아가며 푸드덩 소리를 냈을 곳은 어디쯤일까

집단으로 백로가 서식하던 100여년전으로 돌아가 본다


백로가 집단으로 서식할려면 우선 먹이가 풍부해야하고 둥지를 틀어 

새끼를 길러야 할 마땅한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월평(月坪) 넓은 뜰엔 곡식이 풍부했고 거기엔 메뚜기류의 곤충들이 많았다

백봉령아래 골골이 흘러내린 물은 계곡을 타며 도랑이 되고 개울이 되다가 

월평마을 앞으론 넓은 강이 되어 많은 물이 흘러 넘쳤고 

산밑으로 흐르는 강엔 미꾸라지 버들치등 물고기와 게, 가재 등이 많아 백로가 서식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신흥천 서쪽편 얕은 산엔 소나무가 울창했고 백로는 거기에 둥지를 틀어 새끼들을 길렀을 것이다

새끼가 어느만큼 크면 어미는 새끼를 거느리고 가을 어느날쯤 남쪽으로 날아가며 

수백마리 백로의 비상하는 소리가 동네 사람들에게 깊히 각인되어 노비음으로 정착되었다.


자연의 신비로운 혜택을 받아 아름답게 가꾸어 지던 마을은 불과 60여년전에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면서 

공장설비의 배출가스로 주위의 삼림은 황폐화 되어갔고 소나무에 의지해 둥지를 틀었던 백로는 

정들었던 둥지를 떠나야만 했다. 몇 무리 남아 있던 백로떼는 30여년전 달방댐 축조로 인해 

강물이 바닥을 보이며 강물에 살던 물고기 마저 사라지자 백로도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뇌비름골은 전설속의 이야기가 되었고 지금은 그 터에서 자라는 복사꽃이 산객(山客)의 위안이 되었다.

뇌비름골의 산비탈엔 소나무숲이 언제 있었냐는 듯 예전의 헌헌장부는 찾을길 없고 

대신 아리따운 시골 색시가 배시시 웃고 있다

백로 떠난 자리엔 동네분 누군가 과수를 심어 농산물을 취하고 있고 

설한풍이 잦아들 이때쯤엔 복사꽃이 활짝피어 옛 영광을 대신한다.


이제 백로시대는 끝났고 복사꽃 도화촌으로 돌아가 본다

계곡의 물은 지금도 가재가 나올 듯, 두손 모아 한웅큼 떠서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고 맑다.

계곡의 바닥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어느부분은 무릉계 너래반석을 연상케 한다.

석회암지대가 이곳이라고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넓지도 길지도 않은 뇌비름골은 입구에서 2km 남짓 오르며 끝이 났지만 

길가에서 손짖하며 웃어주는 복사꽃의 요염에 걸음을 멈추지 않을수 없다

고향마을 뒷동산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가 떠오른다.

매화 저 독똑하고 빈틈없이 예쁜모습이 도회적인 면이 있다면 

복사꽃 분홍꽃잎은 훈풍을 몰아와서 주위를 아늑하게 감싸줄 것 같은 내 어린시절의 아랫집 순자 같은 느낌이다.

뇌비름골에서 백로의 영광과 쇠락을 생각해 보고 

자연에 미치는 산업시설의 영향도 함께 생각해 보는 복사꽃 피는 뇌비름골 산행

고향에 안기는듯한 포근한 뇌비름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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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오랫만에 등장하셨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뇌비름골. 참 아름다운 우리 지명입니다.
강원도 곳곳에는 이 같은 순 우리말 지명들이 매우 많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발굴하셔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