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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39 - ‘술 한잔 담배 한 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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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 기형도는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자신의 생을 질책한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며 지금 왜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서 있는가? 그의 시에는 젊은 날의 끓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뜬구름 잡듯 허망하게 살아온 날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냉정함과 소홀함의 한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누구에게나 꿈과 이상이 넘실거리던 젊은 날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더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기에 늘 결핍되고 허기져야했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대해 베푼 것은 술 한 잔과 담배 한 개피가 전부였다.
살아오면서 왜 타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그리도 냉혹하고 인색했던 것일까? 늦은 저녁, 거리 한 가운데 자신을 세워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라고 자신의 생을 내뱉듯 토설한다.
그가 나를 닮았는지 내가 그를 닮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도 때로는 그와 같이 ‘쏘다니는 개’였던가 싶다. 왜 나의 삶은 늘 내가 우선이 아니라 내 아닌 사람이 우선이였을까?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겠다. 아니다. 미친 듯 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다. 나에 의한 나에 대한 사랑이 차고 넘치면 그때서야 그 넘침을 가지고 타인을 사랑하자고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는 나로 하여금 내가 살아온 날들의 수고에 대해 보상을 해줘야겠다. 한 치 물러섬 없이 나에게 죽도록 보상해 주다가 그 보상이 넘치면 타인도 돌볼 것이다.
나부터 사랑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실컷 사랑을 해준 다음, 보상을 해준 다음 생각해 보겠다. 누가 묻기라도 한다면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이 없으면 남에 대한 나의 사랑은 기만일 뿐이라고 말할 참이다.
후일 ‘당신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나중이었다’는 비난과 마주하더라도 그 와는 달리 나는 ‘나 자신을 무척 사랑했노라’라고 그 와는 다른 시를 쓰고 싶다.
나는 나를 파괴하고 싶지 않다. 한없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나를 만나고 싶다.
이제 뻔뻔스럽도록 나를 사랑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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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자체을 아예 생각치도 못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기껏 한다는게 배고픈 시그날이 뱃속에서 나오면 음식을 넣어 주고, 잠이 온다는 신호가 뇌에서 오면 잠자리고 가는 것 정도로 본능적인 생의 유지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부터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타인에게 귀중한 일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나 자신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일인가를 성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우리 자신 대한 성찰 이야기 잘 일었습니다.
해오락님의 댓글
해오락 작성일
시인 기형도 씨의 밑그림으로 에포씨 자신을 반추(反芻)해 보는 좋은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自愛가 곧 他人 사랑의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젊은 날 밀항하여 37년간 미국 정신심리 병원에서 임상훈련을 받고
돌아와 하는 말이 自我을 찾은 것이 내 재산의 전부라고 고백 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찾았다는 것은 인생고해의 문제 반은 발견 했다는 뜻인듯 합니다.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어디 나만의 얘기일까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제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을 위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