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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벼루 언덕에서의 회고(回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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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벼루 언덕에서의 회고(回顧)
내가 초등학교를 이곳 여량 면에서 다닐 때는 아우라지와 꽃벼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곳이었다. 지금은 42번 국도가 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열려 있지만 그 땐 타지로 외출하자면 이 꽃벼루 산길을 완행버스로 거북이처럼 조심조심 기어가듯이 가야만 했다.
입춘이 지나서 봄을 찾아 이 트레킹 코스를 한번 완주 해보고 싶어서 이 길을 걸어 본다. 아직 진달래 꽃은 피지 않았으나 머지않아 필 것을 상상하며 이 길을 걸어 본다. 이 길의 옛 어원를 생각 해 보니, 꽃 낭떨어지라고 하며 봄이 되면 진달래가 많이 피는 곳이라 하여 꽃벼루 언덕이다.
요즘은 한 면(面)이었던 여량면(餘糧面)과 북평면(北坪面)이 나누어져서 일 년에 한 번 견우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에 다시 만나 재 상봉하는 소통의 장소가 되었다는 미담이 있는 길이다.그 때는 여량면이 북면이고 북평은 나전 출장소이였는데....
몇 일 뒤 초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다시 만나 옛 소시적 이야기로 꽃피우며 이 길을 걸어 보았다. "이 길에는 스토리가 많은 길이야! 그 때는 면 체육대회가 남평리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는데 여량면 각 동리마다 선수들이 출전하여 우열을 다투는 날 아침, 첫 차로 응원도 하고 사과를 팔기 위하여 윗 집 춘옥이 누나와 우리 누나, 해월이 누나, 삼총사 아가씨들이 체육회 장소에 출전했지 뭐! 그런데 사과가 오전 중 다 팔려 춘옥이 누나와 해월이 누나는 그 날 그 버스를 두 번째 탔고 우리누나는 집에 남게 되었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과수원 사과를 따서 재차 마지막 버스를 타고 체육회 장소인 남평리 초교로 가다가 그만, 그들이 탄 버스가 첫 구비를 돌아 나가다가 이 꽃 벼루 낭떨어지 언덕에서 그만 굴러 떨어졌었지. 와우~
그 날의 참혹한 참사로 장약국 집 하나밖에 없던 양념 딸이 죽고, 해월 누나와 그의 어머니는 다리 골절상을 입었는데 장기간 강릉 도립 병원에 입원 했었어, 그 골절된 다리뼈가 붙지 않아서 고심 끝에 그들 모녀가 교회를 찾아 신앙 생활을 시작 했고 그 골절된 다리뼈가 신앙심(信仰心)에 의하여 기적같이 치료되는 일이 일어나, 보상금으로 받은 그 자금을 가지고 돌아와 지금 유천교회를 세웠어! 그 날 그 사고의 현장 스토리 핵심은 그들의 희생이 교회의 꽃으로 피어 났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그 교회 출신 소년들이 지금 목사가 됐어." "아 ! 그래 그런 사건이 있었구나." 모두들 공감하며 지난 날의 아픔을 회상하며이 길을 걸었다.
크로노스(chronos)의 명시된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 산천초목, 소나무 ,칡넝쿨 , 굽은 길은 옛 그대로였다. 감회가 깊었고, 시간과 공간의 그리움과 아픔이 마음 속으로 가득차 올라 왔다. 그러나 오랜만에 친구와의 동행 길은 마음 뿌듯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고 이런 소통이야 말로 인생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날이었다.
이 길을 걸으며 고려말 충신이었던 삼은의 하나인 야은 길재(吉再)의 선비의 회고가(回顧歌)가 순간 머리를 스쳐갔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재상들이 변질하여 조선 왕조의 신하가 되었지만 그러나 끝까지 절개를 지킨 충신들의 망국의 한과 슬픔으로 벼슬과 인연을 끊고 초야에 묻혀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폐허가 된 도읍지 개경의 옛 궁터를 돌아보고 자신의 회고를 애 끊는 마음으로 노래 했다고 한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 산과 물은 그대로 있는데 뛰어난 인재는 어디에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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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민초의 삶이 그대로 우러나는 정선아리랑의 본고장 여량은 업무차 여행차 수차례 지나다닌 곳이기도하답니다.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되살아나는 추억을 회상하며 옛친구들과 함께 걷는 행복한 마음을 짐작하고 도 남을 듯 싶습니다.
방랑자님의 댓글
방랑자 작성일
ㅇ여량 배터를 건넌 버스는 파출소앞 차부에서 쉬었다 출발 했구요
꽃 벼루 산 신작로를 돌고돌아 남평에서 다시 버스가 배를 타야 정선으로 건너갔지요
그러나 80년초에 개통된 산업도로(현국도) 덕에 버스가 배를 안타고 다니는데
아련한 추억이겠구료
해오락님의 댓글
해오락 작성일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공감 할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행복 합니다. 오래 오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