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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힐링(Eco heali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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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오락 작성일 2019-02-16 12:23 댓글 4건 조회 8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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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힐링(Eco healing)

야곱이 타향에서 20년의 외삼촌 집 하란생활을 청산하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이삭이 사는 아비 집으로 돌아 올 때 도망치듯 나오는데, 외삼촌 라반이 쫓아와 야곱에게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내 딸들을 칼로 잡은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묻는다.
나 역시 지인들이 왜 ? 시골로 갔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객지생활 40년의 생활을 청산하고 도시를 탈출했다.

사람들은 “도시는 꽃이요 시골은 뿌리라고” 조화와 균형을 이야기 하지만 나는 인간 틈바구니 속에서 “난파선 ” 같은 도시를 탈출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시인 리켈도(Rainer Maria Rilke)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을 어항 속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죽어가는 금붕어 같은 존재의 인간으로 묘사 했다.

아스팔트 매연과 세멘트 라듐과 대기의 오염이 총합되는 6월 중순부터는 기침과 어지러움 숨막히는 공황장에 시달렸고 밤이면 호흡 골란으로 죽을 것 만 같았다.

새벽 1시에 일어나 혼자 정선 항골 패션 임시 거처로 내려왔다. 도착하면 먼동이 트면서 새아침이 밝아 온다.

짐을 정리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스렌지에 압력 밥 솟을 올려 놓고 홀로 아침을 손수 지어 먹으면서 자취생이 아닌 자취 생활로 시골의 삶을 시작했다.

사람은 마음이 안착되어야 즐거움이 오는데 시골과 도시 이곳 저곳을 마음이 오고갔다. 아내와 직장, 생활터전이 다 저기에(서울) 있는데 몸은 여기(고향)에 있다.

신자는 하늘나라와 지상의 나라을 동시에 살아야 하듯, 나도 몸과 마음이 도,농(都農)을 오가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귀농 귀촌한   초보 농부지만 농사는 조금씩 줄어 든다. 힘이 역부족이다. 첫해 서울을 탈출하여 집 경계에 주목나무 50여 그루를 심어놓고 나무를 살리기 위해 물을 주던 시절 이 힘겨웠다. 그 덕에 이제는 온통 집 주변이 푸르르다.

밤나무, 대추나무, 매실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천도 복숭아나무, 뽕나무, 은행나무 모두 유실수다. 밭 주변의 산머루나무는 전에 밭주인이 심었던 자연 야생종인데 제법 머루를 많이 따서 이웃과 소통의 수단으로 나누어 먹었다.

첫해에 아내가 산 머루주를 담구어서 예쁜병에 넣어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니 선물용으로 안성 맞춤이 였다.

자연산 달걀도 이웃과 나누면 최적의 선물이다. 시골 인심은 주고 받는 풍조라 무엇인가 손에 들고 가서 좀, 잡수어 보라고 해야 소통이 된다. 옆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애호박이며 가지, 케베즈(감낭) 를 나누고 심지어 가을이면 찹쌀, 현미쌀 까지 한말 남짓되게 가지고 오신다.

점심식사도 읍내에 모시고 나가 대접해 드리고 무거운 짐들을 내 쌍용 스포츠 차로 운송해 드리면 경운기 밖에 없는 이웃 할아버지는, 깊이 골파인 구리빛 얼굴에 미소가 피어 난다.

시골에 사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이제는 내 내면의 속사람이 맑은 공기와 신선한 채소와 도시로 방출되지 않은 신토불이 쌀로 밥을 지어 먹으니 여기가 무릉도원이 됐다. 나의 가장 즐거움은 서재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먼 산을 바라보면서 형형 색색의 변화되어 가는 자연을 관조(觀照)하는 애코 힐링(Eco healing) 이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의 분리된 삶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옛날 에집트 사막의 수도원의 헤시카스트 처럼, 육체노동, 성경읽기와 필사, 고독과 침묵,기도를 통해 자멸로 치닫는 사회의 난파선에서 자신과 타인을 구원 할수 있는 도피성(逃避性) 되고 싶다.

내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 것은 좁은 시골 땅에서 넓은 대도시를 동경하기도 했지만 많은 직장, 상급학교 뛰어난 사람들 중앙행정 체제에 대통령이 살고 있는 정치 일번지,경제, 사회. 문화,예술 모두가 중앙에서 이루어 졌기에 무조건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대적으로 도시화 산업화 시대의 흐름은 중앙 무대 중심였기 때문였다.

우리말에 말(馬)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웬지 시골에 남아 부모님 밑에서 농사(農事)를 짓고 있으면 좀 먼가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 받던 시대적 흐름이라고나 할까 ?

링컨의 전기를 읽어보면 시골 켄터키 통나무집에서 성경한권으로 그의 지식으로 삼던 산촌(山村)의 사람이 큰 도시 보스톤으로 나가려고 발부둥 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태생적 한계 와 근원적이고 사회적인 여건이 자기발전의 영양소가 된다.

그것은 보고 듣고 배우고 부딪친 환경속애서 터득한 실전 교육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 서울에 정착 할 때 까지는 아내의 덕이 켰다. 자동차 핸들은 내가 잡았지만 아내가 옆자리에서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었다. 표준 언어는 물론이고 의상 신발 허어스타일 에티켓 식생활 모두 아내가 관장하여 나는 서울사람 행세를 했다. 서울이라는 도성 안에도 팔도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순수한 서울토박이는 정작 얼마 안 된다.

 그러나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 했는지 ? 6시 내고향 티,비로 향수를 달래면서 타향인 서울도성에서 향수병 (노스탤지어)을 견디어 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애국자가 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디아스포라들의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때 하루는 강원도 판 차량이 눈에 보여 얼마나 기쁘고 반갑던지 뒤 쫓아가서 얼사 앉고 통성명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였다. 이제 귀향 5년차가 다가온다.

이제는 다시 서울이 그리워 짐은 웬 말인가? 역시 인간의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이곳과 저곳을 오가며 사는 것이 인간인가 본다. 그래, 인간의 본향은 하늘나라야, 그곳에만 인간의 참된 쉼과 안식이 있겠지 !

캐토릭 성직자이며 하버드대와 예일대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 그는 전세계를 유랑하며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찾아 헤메 었다. 그가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우 공동체인 나르쉬에서 가장 고향에 가까운 안식을 얻었다고 고백 했다. 인간이 쉴 참된 고향은 어디인가? 자연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과 숲을 찾았고 거기서 에코오 힐링을 누리지 않았던가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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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고향의 고운 빛과 흙을 품고 등장하신 동문님을 반가이 환영합니다
오랜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을 접고 귀향하신 동문님의 새로운 갈등을 이해할만 합니다.
꽃도 좋고 나무도 좋지만, 노래도 좋고 그림도 좋지만 사람은 결국 사람과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는,
살갗과 살갗을 비비며 살아가는 삶이 우선이 거니 생각해 봅니다.ㅎㅎ
하루 속히 한가족 모두 에코 힐링이 살아 숨쉬는 정선으로 뭉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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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락님의 댓글의 댓글

해오락 작성일

선배님의 댓 글 깊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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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철님의 댓글

김남철 작성일

벌써 5년에 접어들었나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말못할 어설픔 속에 시행착오도 많았겠지요.
소생의 귀향 귀촌 역정을 회고해 보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더이다.

해오락님,
글 속에 향수가 가득 배어 있어 마음이 애잔하였습니다.
결단하여 고향 안착이란 소망을 이루어 내심을 축하드립니다.
오랍드리 터전 잘 가꾸시며 만사형통 행복하시길 성원하겠습니다.
에코 힐링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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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락님의 댓글

해오락 작성일

한국인의 의식 속에 고향으로 돌아 와야 된다는 회기 본능의 자의식이 내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범주에 속하여 있고요 ! 김남철 동창님 의 댓글을 읽으며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