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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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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6-11 11:00 댓글 0건 조회 6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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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Q

  인간의 능력은 어디서 올까?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극대화 시켜 줄 것인가?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함께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몰골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그 능력의 십 분에 일도 써 보지 못하고 말아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일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오로지 국영수에만 매 달려 온 것이 현실이다. 이를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것이 대입수능이라 본다. 위 세 과목을 신통히 하지 못하는 자는 대입수능 대열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그 세계에서 무능한 학생으로 낙인이 찍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국영수가 그렇게 중요한가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서 비판보다는 수용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영수 과목으로 이 세상에서 밥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해 보자. 물론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다면 모를까 그것을 바탕으로 밥 벌어 먹는 사람들은 연구원이나 과학자, 교사나 교수, 학원 강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학교 교육의 비중을 따진다면 국영수로 밥 벌어 먹어야 할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 밥 벌어 먹여 주지도 못할 영역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열정과 금전을 쏟아 붇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영수가 바탕이 된 사람이 다른 분야에 종사를 했을 경우 그와 연관되어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기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잘 못함으로서 다른 것도 못한다는 편견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는다면 이 또한 소망스러운 일은 아니라 본다.

 

  인간의 능력을 측정해 보고자 하는 욕망은 과거부터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 맞는 능력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계량화시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은 것이 프랑스의 학자 비네로 부터였다. 그는 IQ라는 것을 통하여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고자 했다. 여기에 주안점은 언어와 수리, 논리였다. IQ측정지를 통하여 테스트를 한 다음 그 점수를 가지고 인간의 능력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 이 능력이 높은 사람이 학습력도 높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들은 초 중학교 때 IQ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날 것이다. 아주 예전에는 이 IQ를 생활기록부에다 적어 놓았던 적도 있었다. 그 숫자만 보아도 그 학생의 학습력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인간의 능력을 간단한 시험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교육자들은 거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 점수와 학습력과 연관이 있었음으로서 더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IQ검사를 학교에서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영수의 학습력만 가지고 학생을 속단할 가능성이 높음으로 인하여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예견이라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엄청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식이 태어나면 이 아이가 나중에 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 부모가 없듯 부모나 선생이나 본인 자신들이나 자신의 능력을 보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서 자유스러운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본다. IQ가 학습의 능력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그것을 함부로 써 먹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도 중론인 만큼 새로운 지표를 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를 해결해 주고자 노력한 학자가 있었으니 미국 하버드 대학의 하워드 가드너라는 학자였다. 이는 1983년 다중지능이론이라는 것을 고안하였다. 인간의 능력을 국영수 같은 도구과목에 학습에만 국한하지 말고 새로운 시선으로 찾아보자는 것이 그의 발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능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IQ가 어느 정도 학습이 된 사람에게 유리한 점수가 나오는 반면 가드너가 주창한 이론은 그야말로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능력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가지는 수많은 능력을 9가지로 압축을 시켜 놓았다. 9가지를 가지고 상호간에 조직적으로 잘 엮는다면 모든 인간은 남과 다른 천부적인 능력을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가 연구한 인간의 9가지의 능력군은 언어, 공간, 음악, 실존, 자기성찰, 대인관계, 수리논리, 자연탐구, 신체운동으로 나누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런 잠재적 능력 중 한두 개는 타고 내어 났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몇 개의 능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IQ만 가지고 학교에서 학생을 판단하던 시절에는 그 점수가 낮은 학생은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던 시절에 배운 사람들은 자신의 가지고 있는 귀중한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받아 보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IQ로 인하여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정한 교육의 기회를 받아볼 여지가 없이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간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학습능력 제일주의가 빚어낸 비극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IQ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하워드가드너가 주창한 다중지능이론을 적용시켜 본다면 인간이 가지는 능력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국영수 위주로 학습한다면 다중이론은 불리해 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9가지의 다중지능이 있는데 학교현장에서는 한 두 개만 집중적으로 지도를 함으로서 나머지 영역에 대해서는 소홀히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능력이 출중해도 IQ영역이 뒤처지면 우수하지 않은 학생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원초적인 문제점을 교육학자들은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학자들 마저도 IQ의 틀에서 태어나 배운 관계로 다중이론에 맞는 연구를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 본다. 그래도 식견이 있는 선각자들로 인하여 학교 현장에서 다중지능이론이 설 땅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예체능, 과학, 언어, 특정기술만 전문으로 하는 특수목적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 이름하여 동아리 활동인 것이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자신이 심취할 수 있는 영역을 섭렵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발전이 아닐까 싶다.

 

  학교가 학생들을 주눅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IQ개념으로만 접근한다면 학생들의 99%는 불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고 본다.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들은 만족할는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패배주의에 젖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된 것이다. 하워드의 다중지능이론을 접한다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본다. 다양한 인재가 많이 나오는 나라가 제대로 된 국가일 것이다. 획일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다양한 세상에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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