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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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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5-25 08:45 댓글 0건 조회 6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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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lut


   옛날, 우리 모교가 농업고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머지않은 과거였으나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짐은 그만큼 세상이 정신없이 바뀌고 있다는 증좌가 아닐까 생각된다. 엊그제 일도 까마득한 과거로 인식되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시를 겪었던 사람도 아득한 추억의 세계로 빠지는데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 않나 싶다.

 

   농업고등학교 시절에 곳곳에서 일어났던 일화를 일일이 다 열거한다면 소설을 써도 몇 권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농고 시절에 사연이 가장 많이 깃든 곳은 다름아닌 실습농장이었을 것이다. 농업에 가장 기본이 되는 답작에서 시작하여 전작포, 사료포, 우사, 돈사, 채소포, 과수포, 온실, 양계장, 부화장, 사슴사, 양잠실, 묘포장, 농기계실, 농업공작실, 농구실, 농산가공실 등이 주종을 이루었으리라 본다.

 

   그렇게 많은 실습포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리얼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온 포장 중 하나가 양계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포장의 특징은 일 년 내내 운영이 됨은 물론 생산물도 계속 나옴으로 일 년 내내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다. 그 활기는 담당선생과 당번학생이 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지역주민들도 한 몫 단단히 한 것으로 기억된다.

 

   옛날 모교의 양계장은 신 교문을 들어오다 오른쪽에 위치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흉상공원과 공동실습소 자리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양계장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닭똥의 특유한 냄새가 압권이 아닐까 싶었다. 성덕국민학교에서 불어오는 바람 따라 운동장쪽으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 어느 누구도 그 근처에 양계장이 있을 것이라 짐작이 갈 정도였다. 지금 그 자리에 양계장이 있다면 근처 아파트에서 집값 떨어진다고 난리가 났겠지만 예전에는 농고에서 닭똥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던 순진한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다.

 

   오후 3시 정도 이후에는 그 날에 낳은 달걀을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판매를 했던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다행이 교문 옆에 있었던지라 학생이나 교직원과 마주치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오후 시간대가 되면 농고에서 생산된 싱싱한 달걀을 구입하기 위하여 아줌마들이 계란 바구니를 들고 삼삼오오 교문을 들어오던 장면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주로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주 고객이었던 관계로 알게 모르게 모교와는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난좌가 발달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달걀을 깨지지 않게 가지고 다닐 수 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계란 바구니가 있든가 아니면 짚으로 계란을 엮어서 운반이나 유통을 하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계란은 부잣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 아니었던가 싶다. 필자는 어렸을 적에 계란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거의 먹지 않은 음식 중 하나가 돼 버렸다. 그런 관계로 주변에서는 별난 종자로 비쳐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농고였던 시절에 모교 부화장에서 병아리를 깠던 시절도 있었다.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는 우선 유정란을 만들고 그 알을 21일간 37.5도를 맞추어 주면서 전란을 계속 실시해야 한다. 대대적으로 유추를 해야 하는 곳은 기계가 하지만 자연속에는 닭 에미가 품어서 부화를 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당시에 부화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진화된 것을 도입하여 운영하였으리라 본다. 지금 그 기계를 보관했으면 훌륭한 볼거리와 추억거리가 되었을 터인데 이미 폐기된 지 오랜 관계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렸다.

 

   부화를 하다보면 어느 정도까지 잘 크다가 달걀 안에서 죽는 수가 종종 발생한다. 워낙 많은 개체수를 넣다보니 그 중에 변변치 못한 종자는 이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달걀이 귀하던 시절 이렇게 부화가 안 된 달걀을 모아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통칭 사룡난, 또는 시그마리라고 통용되었던 기억이 난다. 달걀 안에서 거의 정상적인 개체의 모양을 다 형성한 병아리 직전 단계까지 온 것을 식용으로 한다는 것이다. 실제 비유가 약한 사람들이 먹기에는 많이 껄끄러운 음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소금에 찍어 먹게 되는데 생각보다 훨씬 연한 식감을 느끼면서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맛과 비쥬얼이 나오게 된다. 물론 소주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겠지만.

 

   이와 유사한 음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나라가 있으니 다름 아닌 동남아에 위치한 필리핀이다. 이곳에서는 계란이 아니라 오리알을 통하여 부화 직전까지 가게 만든 다음 삶아서 식초와 마늘이 든 소스에 찍어 먹는다는 것이다. 같은 조류인 관계로 우리가 예전에 먹었던 샤롱난과 큰 차이는 없으리라 본다. 단 그들은 부화 직전까지 간 오리 알을 통하여 새로운 음식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아무리 특이한 음식이라도 비쥬얼이 워낙 생소한지라 보통사람들이 먹기에는 용이치 않다는 것이 후일담이다. 특히 오리는 부리가 발달한 동물임으로 이것을 먹을 때 오들오들 씹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리 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음식을 필리핀에서는 발롯(balut)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 세월에 별 거부감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접했던 음식이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 음식문화를 같이 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점이 더더욱 많이 남는다.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음식의 세계를 맛 본다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런 음식이 내 앞에 온다고 했을 때 선뜻 입으로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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