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길길묻 2 - 『 동심초 同心草 』
페이지 정보
본문
어제까지 빗방울을 뿌리며 잔뜩 흐렸던 날씨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맑게 개였다. 햇살은 따사롭고 뜰앞의 개나리가 어제 갓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부리 같은 꽃망울을 내미는 시간, 문득 시 한 구절이 떠올랐으니 당나라의 기녀이자 시인인 설도(薛濤·약 768∼832)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春望詞(봄날의 그리움)’다.
꽃잎 바람에 지듯 세월 덧없고
만날 날은 아득한데 기약조차 없네
님과 마음을 하나로 맺지 못한채
부질없이 풀매듭만 매고 있네
가지마다 핀 꽃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리움은 자꾸만 되살아 나는데
옥구슬같은 눈물 거울위로 떨어지는 아침
봄바람은 이 마음 알까.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那堪花滿枝, 번作兩相思.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당나라의 기녀이자 시인인 설도(薛濤·약 768∼832)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春望詞(봄날의 그리움)’에 나오는 원문 한 구절이다.
일설에 의하면 설도는 지방의 관리로 있던 아버지 밑에서 일찍이 학문을 익혔다고도 하고, 어려서부터 문학에 재능이 뛰어났고 성장한 이후 지조를 갖춘 기녀였다는 설도 있으나 그 진위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당대의 시인 백거이, 원진(元稹) 등과 시를 주고받을 만큼 뛰어난 미모와 학식을 갖춘 재원으로 알려져 있다.
설도는 문인들 중에서 자신보다 열살이나 연하였던 시인 원진과 연인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나이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춘망사(春望詞)'는 설도가 마흔살 전후에 사랑하는 님과 이별을 괴로워 하며 지은 시로 추측할 뿐이다.
4수로 된 오언절구의 연작시로 우리에게 전해진 이후 익히 알려진 이 시를 김소월의 스승 김억(金億)이 그중 제3수를 각색하고 작곡가 김성태가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 내용 중 한 구절을 따서 '동심초(同心草)'라고 제목을 붙이면서 한국 가곡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곡으로 태어나게 된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사랑에 빠진 40대의 농익은 여인이 덧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게앞에 정든 이와 하나가 되지 못해 풀잎을 따 부질없이 매듭만 짓는 모습이 그림처럼 오롯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세기적 가수 조수미의 청초한 목소리가 얹힌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시인의 기다림은 애처롭다 못해 가슴을 후벼판다.
꽃잎에 실려 날리는 그리움의 절절함이 배인 시의 제목 동심초는 식물도감에도 없는 꽃이다. 추상적 개념의 마음속에 피어난 풀꽃일 것이다. 동심초를 종이를 만드는 재료인 풀 ‘초(草)'가 들어갔기에 연서(戀書)로 바라보는 이도 있지만, 많은 시인들이 사랑이나 그리움의 상징물로 꽃이나 풀을 등장시켰으니 연서가 아니면 또 어떠랴.
정작 중요한 것은 그녀의 보석처럼 빛나는 시적 언어가 천년의 세월을 넘어 현대음악과 절묘하게 만나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며 영혼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