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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傅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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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傅가 보고 있다.
옛말에 군사부일체란 말이 있었다고 한다.
“임금, 스승,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라는 의미로 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세 존재의 은혜를 입었으니 충성을 다 해야 한다는 사족적 해석도 덧붙여 본다.
신문물이 들어온 다음에도 그런 사고방식을 굳건히 존재했다고 본다.
지금도 사대부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위의 가치에 대해서 신봉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리라
상상도 해 본다.
어쩌면 이런 단어를 소환한 저 자신도 그런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인지도 모른다.
제목에 사부는 자기를 가르치면서 이끌어 주는 사람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 시대에 걸맞는 표현으로 한다면 스승이나 선생님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배우고 가르치는데 대해서는 많은 공을 들렸던가보다.
인간으로 태어나 배움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배움이란 영역을 어디까지 한정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배움이라 하면 학교에 가서 국영수사과 같은 과목을 가지고 선생님께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라 보기가 쉬울 것이다.
물론 그런 행위가 배움에 대표적 케이스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움에 꼭 학교나 서당이 들어가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줄 수 있는 그 모든 것은 나의 스승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스승이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어떤 사물을 보는 순간에 거기서 뭔가 영감이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 대상도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직접적으로 훈육하고 지식을 집어넣어 주는 사람만을 스승이라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배우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워낙 많기에 좀 넓은 면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현대판 훈육 사부로서 가장 리얼한 것이 CCTV라 본다.
어디가도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기계가 알아서 제어를 해 주는 것이다.
이 CCTV(closed circuit television, 폐쇄회로 텔레비전)가 나옴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조심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물론 범죄예방이나 범인 검거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되잖을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회초리 역할도 단단히 하고 있다고 본다.
자동차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 안전과 조심성을 키워줄 수 있는 대상이 과속이나 신호위반 ,
주정차 단속 카메라일 것이다.
이게 없다면 도로에 무법자들로 인하여 평범한 사람들은 운전하기 힘들어 질 수 도 있었을 것이다.
도로나 주차장이 개판이 될 수 있는 것을 이 카메라가 어느 정도 제어를 해 주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신을 제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칠팔십이 넘어도 욕을 해 대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의 처신에 대해서 제어가 제대로 안 되는 부류의 인간인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카메라나 녹취용 녹음기를 들이 대면 조용해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길길이 날뛰던 자들도 이런 기계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수도 생긴다는 것이다.
경찰보다야 효과가 좀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샛길로 가는 인간을 제어하는데 훌륭한
도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부모나 선생, 경찰의 말은 잘 안 들을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제어하는 기계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졸장부들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영역에서 기계를 들이대고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제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가장 이상적인 인간 제어책은 스스로가 타인에게 피해를 아니 주고 준법질서를 잘 지키면서
살아갈수록 하는 것일 것이다.
내 마음에 CCTV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타인에게 모범적인 인간으로 보여질 수 도
있을 것이다.
너무 기계적으로 인간을 제어하는 방법에 대하여 언급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자신을 제어하여 좀 더 원만하고 가치 있고 세련된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유전적으로 공 맹자나 아리스토텔레스같이 최고 경지의 도덕과 윤리를 타고 태어
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여염집에서 태어난 고로 그런 복을 가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고 본다.
샛길로 가고 싶을 때 자신의 부모를 생각해 보자.
물론 억한 심정에서 더 험악한 샛길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 볼 것이다.
학문이나 기술, 기능을 배울 때엔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을 떠 올려보자는 것이다.
선생님이 늘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허투른 행동은 어느 정도 제어가 될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마인드를 어떻게 정립시키는 것이 최선책일 것인가는 늘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누군가가 늘 체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신의 인생을
엮어 가리라 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부는 너를 예의주시하면서 보고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살아간다면
나의 가슴속에는 가상의 스승이 늘 존재할 것이다.
돈 안들이고 나에게 맞는 스승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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