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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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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시오.
줄 서는 것이 대세인 세상으로 들어왔다.
싫던 좋던, 어리던 늙었던, 여자든 남자던 간에 줄이 뻗치는 곳에 볼일을 보기 위해서는
그 뒤켠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는 줄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지만 낫살이나 먹고 젊은 아이들
대열에 끼어 줄을 선다는 것은 별로 아름답게 보이질 않는다.
줄을 선다는 것은 과거엔 질서를 잡기 위한 수단에 치중되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입학식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부터 줄 서는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기준점이 있으면 종대나 횡대의 줄에 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의에 의한 줄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줄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런 줄은 오로지 질서유지와 폼을 잡기위한 수단의 산물이라 보여진다.
학교생활을 마치고 군대에 가면 그야말로 제대로 된 줄을 서게 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잘못해서 줄에서 한 치의 오차를 남기고 서 있다 보면 그 뒤쪽은 줄 자체가 이상하게 되는
모습도 보아왔다.
그 줄에서 더 벗어나다보면 고문관으로 분류되어 이상한 군인으로 분류되는 불상사도 발생된다.
자연스럽게 줄이 대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바싹 긴장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군에 갔다 오면 다른 것은 모르지만 오와 열을 제대로 맞출 정도의 인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것도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사회에 나오면 줄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설이나 추석명절에 귀향 표를 사기 위하여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 가서 밤새 줄 섰던 역사도 있었다.
고향에 가서 인 친척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시간씩 벌벌
떨면서 줄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줄을 선다는 것은 줄 끝에 뭔가 내게 이익이나 득이 될 수 있는 꿀물이 기다리고 있을 때
형성된다고 본다.
로또아파트 분양 날, 백화점에 명품 핸드백 세일 하는 날, 명품 스마트폰 초판일, 유명한
맛 집에 밥 한 끼 얻어먹기 위해서는 싫던 좋던 줄을 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영화나 연극, 오페라를 한 편 보기 위해서도 줄을 섰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성을 거의 못 느끼는 시대에 들어왔다.
인터넷으로 클릭만 잘 하면 집 안에서도 줄 안서고 표를 살 수 있는 세상에 온 것이다.
우리는 줄 서는 것에만 익숙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생각이나 발상의 전환을 하여 나를 향하여 줄을 서게 만든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를 향하여 줄을 선다면 아주 색다른 맛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 고장은 관광명소가 많은 곳이다.
그러다보니 음식문화도 타 지역에 비해서 상당히 창의적이고 독특한 곳이 많다고 본다.
그런 집을 가지고 우리는 ‘맛 집’이라고 일컫는다.
맛 집 사장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만든 맛에 반하여 줄을 서는 사람이 있다는데 대하여
얼마나 큰 자긍심을 가잘 것인가를 헤아려 보자는 것이다.
그게 맛 집 사장님이 아닌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이라면 어떻겠는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줄을 길게 서 줄 고객이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어갈 것인가.
남의 가게 앞에서 줄 서는 것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니, 생각할 필요성 자체가 없을 수 있다.
왜, 내 것이 될 개연성이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는 자는 당대가도 종속적인 세계에서 빠져나올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수동적인 인생이 편할 때가 많다.
남이 차려준 밥상을 먹는 것이 편하겠는가 아니면 내가 상을 차려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 편하겠는가에 대하여 어떤 답이 나오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인간이기에 편한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 길로 안 간 사람이 타인에게 감동을 주면서 줄을 서게끔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의
소유자라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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