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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pu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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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어떻게 갉고 닦느냐에 따라 그 성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 무한한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꺼내 쓸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뇌는 일반 장기와 달리 쓰면 쓸수록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능이 더 나올 수 있다는 논리다.
교육이라는 것의 어원은 지식을 가르치고 육성한다는 의미인데 learn은 gain knowledge or skills의 뜻으로 지식이나 기술을 얻는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교육은 집어넣는데 치중하는 과정이고 learn은 끄집어 내는데 주안점을 둔 과정이라 보면 될 것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선생님을 엄청 중요시 여긴다. 교육자체가 선생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논리임으로 선생없이 배울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교육체계에서 유능한 교사가 있으면 배우는 학생들이 많은 식견이나 지식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학생들이 빈 쭉정이만 배워야 하는 일이 발생된다.
교육은 곧 교사라는 등식을 추구하는 교육에서는 교사에 대한 호 불호도 완전히 갈리고 있다. 학년초 초등학교 담임의 배정 시 어떤 담임을 맞느냐가 1년의 농사를 좌우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우리는 보아오고 있다. 운이 좋아 좋은 교사를 맞는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당해 연도는 물론 그 앞날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아우성이다. 아직까지도 우리 교육은 교사의 입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말 많은 놈은 별로 였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말해 침묵은 금이라는 명제 하에 말 많은 것을 터부시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말 많은 놈은 공산당으로 몰아붙이려 했던 과거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말을 통하여 기득권층에 대하여 바른 말과 비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을 잠재우는 하나의 수단으로 그런 내용을 퍼뜨렸는지도 모른다. 물론 침묵으로 일관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켜야 하겠지만 우리가 입을 다물고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침묵이 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들이 시대를 앞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말이 많다는 것은 그 말을 풀어낼 수 있는 소스가 머릿속에 많이 들어 있다는 것과 상통할 것이다. 물론 빈 깡통이 요란스러울 수 있으나 말을 잘 하는 것은 빈 깡통이 굴어갈 때 요란스러운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배운 것은 쥐뿔도 없어도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고 본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경험을 소중하게 머릿속에다 기억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라 보면 될 것이다. 굳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일상사에서 늘 관심을 가지고 매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남들이 공부를 통하여 노력한 만큼 사회를 통하여 자신을 보려고 노력을 한 사람이라 보면 될 것이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나 식견이 밖으로 표출이 안 된다면 모니터나 프린터 없는 컴퓨터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아무리 성능이 좋은 컴퓨터라 해도 모니터나 프린터가 없다면 써 먹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역으로 컴퓨터는 별 볼일 없는 사양이라 하던 라도 모니터가 그럴싸하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게 볼 수 있는 기회는 줄이라 본다. Out put이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out put을 원활히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을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정교육에서 out put은 부모와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리라 본다. 말로는 쉬우나 실제 실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 이 방식이라 본다. 물론 부모가 양식이 풍부하여 아이가 원하는 답이나 질문을 해 줄 수 있다면 가능하리라 보지만 이 또한 용이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군대식으로 밥을 입으로 퍼 넣는 식의 식사문화로는 식탁에서 대화는 쉽지 않으리라 본다. 밥상에서 아이들과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out put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Out put교육의 핵심은 역시 학교 교육이라 본다.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입에 침을 튀기면서 가르치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왔다. 입에 침을 튀기면서 가르치는 것도 모자라 몽둥이로 찜질을 해 가면서 지식을 불어 넣어주기에 바빴던 것이 과거에 교육 방법이었다. 오로지 선생님의 의지에 의해서 교육이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지식을 집어넣기에는 그럴싸할는지 모르지만 모든 학생이 다 수용할 수 있는 교육법은 아니라 본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가정 하에 교육이 이루어지리라 본다. 현재는 유한하지만 무한한 방향으로 안내를 해 주는 것이 학교가 아닐까 싶다. 무한하다는 것은 어떤 한계를 지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A라는 국어선생님께 국어를 배웠다고 해서 그 제자들이 쓴 글이 똑 같으리라는 보장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붕어빵 식으로 찍어 내는 교육으로 일관되어 왔다. 심지어 인간이 살고 있는 일거수일투족도 똑 같아야 직성이 풀리는 교육이다. 완전히 군대식의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교육방법에서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린다는 것은 용이치 않으리라 본다.
교육만큼 유연성이 있는 것도 없으리라 본다. 학생들에게 어떤 프로그램을 심어주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은 획일화와 통일성에 주안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규정이나 틀에서 벗어나면 엄격한 통제를 받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연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가 난센스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의 교육방식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직성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능력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묘책은 없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자. 깊숙한데 숨어 있는 만큼 그것을 햇볕으로 끌어낸다는 것 자체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선 뇌 깊숙한 곳을 어떻게 자극하여 그것이 튀어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학생 스스로가 그것을 끄집어내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다. 소위말해서 자기주도적인 삶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천부적인 능력을 스스로 살필 수 있는 계기를 끊임없이 찾을 것이다. 교사는 그것을 끄집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코칭 역할을 하면 될 것이다.
Out put 트레이닝에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나와 있다.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현실에 적용이 용이한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리라 본다. 인간의 뇌에 들어가 볼 수 없는 한 개개인이 표출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그 학생이 가지는 천부적 자질을 계발시켜 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이것만 제대로 발굴시켜 준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세계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천부적인 능력을 펼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이 하나 있다. 이런 사회적 편견이 인간이 가지는 능력을 폄훼하는 사례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도 많이 보아왔다. 옛날 조선시내 신분을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을 지었고 그것도 모자라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사농공상으로 구분하여 신분상 불이익을 얻는 구조로 되어왔다. 이런 사고방식이 아직까지 우리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도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법학이나 행정을 통하여 고위관리직으로 나가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모습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래도 신분의 상승을 가져온 부분은 연예분야가 아닐까 싶다. 옛날에는 연예계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광대라 칭하며 천하게 대했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면 의사나 판검사가 되라고 닦달하는 사회에서 그 사람이 가지는 특별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마저 원초적으로 봉쇄되는 사회구조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찌하였던 사회적인 통념이 인간의 능력을 마음껏 개발하는데 장애요소가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만은 없다.
학교현장은 조용한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쉬는 시간이건 수업시간이건 정숙이 생명이다. 과연 학교라는 곳이 절간처럼 조용한 것만 능사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물론 조용하면 사건 사고가 덜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억압과 통제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스러운 사고방식이 학생의 머리에서 나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방임하여 그냥 소란스러운 교실이나 학교로 만들어서도 안 될 것이다. 떠들어도 교육적으로 가치가 있게 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방법을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외국에 교육은 우리처럼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이나 주입이 아니라 학생들 머리에 있는 능력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머릿속에 지식이나 식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머릿속에 무엇인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빈 깡통이 요란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프로그램은 깔려 있어야 한다. 이 기본을 넣어 주는 것을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교육의 방법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기본이 되어 있으면 그 다음부터 풀어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아니 대학에서도 일방적으로 지식과 식견을 불어 넣는 방식으로는 배출된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이것을 풀어 쓰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재조합하고 융합하여 이 사회에 걸맞게 적용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수업방식은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 인간의 머리에 든 지식이나 식견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킨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기주도적인 학습으로 전환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터득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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