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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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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4-05-20 14:41 댓글 0건 조회 4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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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1010.jpg

 

막상 한 이불속에 들기는 했지만 부끄럽고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침묵이 흘렀다. 오늘 밤 기꺼이 대감을 모시겠다던 부용도 막상 자리에 들자 얼음이된 듯 천장만을 응시한 채 움직일 줄 몰랐고, 어줍기는 노대감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를 지나자 침묵을 깬 것은 뜻밖에 대감이었다.

 

너는 도연명의 사시(四時)를 아느냐?”

 

뜻밖의 질문에 막혔던 숨통이 터진 부용이 얼른 대답을 한다.

 

네 소첩도 한번 읽은 적이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읊어 볼테니 네가 기억나는대로 대구를 한번 해 보거라

 

春水滿四澤이라.” (봄물이 못에 가득하구나)

 

그러자 한참을 기억을 더듬던 부용이 대구를 한다.

 

夏雲多奇峰이옵니다.” (한여름 구름의 봉우리가 참으로 기묘하기만 합니다)

 

그 시각부터 노랑유부는 조금씩 긴장감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시작한 봄바람이 이불속을 살랑이기 시작했다. 다소곳한 봄꽃이 꽃잎을 살포시 열고 대감을 희롱하면서 소리도 없이 커다란 바위 하나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꽃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불 속은 신분도 나이 차도 없었다. 태초의 모습이 된 본능만이 존재했다. 서로 함부로 유린하고 한없이 존경했다. 몇 차례의 거칠면서도 부드럽기 한없도록 비구름이 스쳐 지나가자 새벽 동이 트기 시작했다. 밤새 만리장성을 쌓는다 하던가.그렇게 운우지정(雲雨之情)의 밤이 지나갔다. 꿈결만 같은 첫날밤을 보낸 그들에게 속정만큼은 이제 남남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정으로부터 칙서를 소지한 한 관리가 내려왔다. 칙서에는 이대감을 조정의 호조판서(戶曹判書)로 임명하고자 하니 서울로 올라오라는 내용이었다. 일흔일곱 이대감의 입장에서는 나이도 나이려니와 벼슬도 할 만큼 했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필요없다 할 만큼 행복감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감을 신임한 어명을 거역할 수도 없고 조정의 사정이 사정인지라 거절할 처지도 아니었다.

 

부용 역시 이대로 평양에서 일편단심 끝까지 대감을 모시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으나 사사로운 정 때문에 국정을 내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영전을 해 가시는 마당이니 떼를 쓸 명분도 없는 것이다. 대감이 떠나면 부용은 의지할 곳마저도 없어질 판국이니 그저 앞이 캄캄할 뿐이다.

 

그런 눈치를 챈 노대감은 예방(禮房)을 불러 부용은 이제 나의 부실이 되었으니 기적에서 털어버리도록 하라.”고 분부를 내렸다. 그리고 부용에게는 내가 나이가 들어 평양에서 첩을 두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왕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그러니 잠시 기다리면 사람을 보내어 데려가겠노라.”고 토닥였다. 이렇게 하여 부용은 이대감의 소실로 적을 올리며 기생의 신세를 벗어나게 되고 대감은 서울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하게된다.

 

기생의 신분은 면했으나 서울로 올라간 대감에게서는 몇 달이 지나도록 그 어떤 소식도 없었다. 차라리 약속을 말던가 기약이 있는 기다림은 사람의 애간장을 타게 할 뿐이다. 부용은 오직 대감을 그리워하며 애절한 시나 쓰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垂楊深處倚窓開 실버들 늘어져 살랑이는 창에 기대서 보니

小院無人長綠苔 님 떠난 집은 푸른 이끼만 끼었네

簾外時聞風自起 주렴밖에는 봄바람이 불어올 뿐

幾回錯誤故人來 님은 소식을 보낸다 했지만 속은 것이 몇 번인가.

 

春風忽?봄바람은 화창하게 불어오는데

山日又黃昏 서산에는 오늘도 하루해 저물어

亦如終不至 오늘도 님 소식은 끝내 없고

猶自惜關門 애석함에 차마 문을 닫지 못하네.

 

) 사시(四時) 

 

이 시는 도연명이 40세 때 지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시다. ,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四時)을 도연명만의 감각적 시어로 진솔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은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더러 남녀의 성적인 대화로 해석하기도 하나, 이는 후세의 사람들이 이를 교묘히 인용한 썰에 불과하다.

설령 그런들 어떠한가, 성을 천박하지 않게 자연의 섭리와 예술로 승화시킨 글솜씨 또한 아무나 할수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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