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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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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4-05-06 12:25 댓글 0건 조회 4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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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1024.jpg

 

김이양대감은 내가 지은 이 시를 어떻게 아셨을까? 더구나 어찌하여 단 한 번도 마주해 본 적이 없는 시골 한구석에 사는 어린 기생을 기억해 신관 사또께 잘 돌보아 주라고 당부까지 하셨을까? 생전 처음 사람대접을 받아본다는 감격에 부용은 그만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사연인즉, 그때 왔던 서울 손님 중에 김이양대감의 제자가 있었는데 어린 부용의 시재에 놀라 스승인 김대감에게 그 일을 고했고, 김대감은 이를 잊지 않고 있다가 유관준이 성천부사로 부임을 해 오자 편지의 말미에 이 같은 부탁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하니 유관준은 그 자체가 인격을 갖춘 관리일뿐더러 조정의 고관이자 스승인 김대감이 아끼는 부용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부터 부용은 가끔 유관준의 시우(詩友)가 되어 주고 단 한 번 얼굴도 보지 못한 김대감을 뒷배로 사또의 지극한 아낌과 보호 아래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사또의 부름을 받은 부용이 부용당에 나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성천의 선비들이 둑길 위에서 부용을 보자 눈을 흘끔거리며 하는 말이 꽃이 더 고우냐. 부용이 고우냐 하며 자신을 흘끔흘끔 쳐다보길래 은근히 자신을 과시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런 시를 짓게 된다.

 

그녀가 지은 <희제(戱題)>라는 시를 보자.

 

 

芙蓉花發滿池紅 부용화가 연못가 가득 붉구나

人道芙蓉勝妾容 사람들은 부용이 나보다 곱다하지만

今日遇從堤上過 오늘 우연이 둑 위를 지나다가 보니

如何人不看芙蓉 어찌하여 사람들은 부용꽃은 보지 않고 나만 보는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이였기 때문이거나 미모와 문재에 자신감이 지나쳤거나 알면서도 세상 풍파를 이겨내기 위한 선택이었는지 그녀는 겸손보다는 당돌을 택한 것이다. 부용이 이 시를 읊으며 시를 쓴 사연을 말하자 연회에 참석했던 관리와 선비들은 찬탄을 금치 못하고, 부사 유관준이 이 시에 답시를 읊었으니

 

勝妾容宴 부용을 위한 연회에

 

成都美妓玉羅裳 성천의 아름다운 기생 수려한 비단치마

幅幅春風步步香 폭마다 봄바람 일고 걸음마다 향기로다

黃鶴金獅迎相舞 황학무 금사무 한데 어울려 도니

降仙樓上降仙娘 강선루에 선녀가 내려온듯 하구나.

 

산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가끔 연회에 참석하여 시문답을 하며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성전부사로부터 급한 기별이 왔다. 곧 평양감사로 계시는 김이양 대감에게 인사를 가려고 하는데 혹시 동행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왔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일간 부용의 마음의 갈등이 시작되었으니 지방의 어린 천기 주제에 과연 이 지체가 하늘에 닿은 어른을 만나러 가도 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일면식도 없음에도 자기가 쓴 시까지 기억하면서 사또에게 신상을 부탁해 주신 어른이 아니시던가. 자기의 시문에 대한 재능을 알아주는 어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알현을 하고 싶었다.

 

마음속에 두고 존경해 오던 김대감을 만날 수 있다니 게다가 부용으로서는 그야말로 불감청(不敢請)고소원(固所願)이 아닌가. 결국 부사를 따라 나서기로 결심을 하고 그날부터 몸을 정결히 함을 물론 그동안 익힌 시문들을 다듬으며 평양으로의 출행을 학수고대하게 된다. 활짝 피어나려고 봉우리를 맺기 시작한 방년 19세의 그야말로 부용화를 닮은 부용과 77세의 노대감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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