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파고드는 햇살 한 줌 손안에 감아쥐고 땅의 기원 하늘로 이어진 실오라기 같은 줄 하나에 매여 풍상의 세월 덧없이 스쳐 간 풍경소리 세존世尊의 추녀 끝에 매달려 백 년을 울었을까 천 년을 울었을까 그 소리 귀담아듣던 구름만 사바의 거리 바라보는 산마루 넘어 물소리, 새소리 젖어 바다로 가고 그 바다 망망한 가슴에 솟은 섬 하나 핏빛 노을 번진 자비심 등에 지고 응얼진 중생의 번뇌를 삭히며 저물어 간다.
마음 고요한 물빛 같았던 날에 수선화 꽃 그림자 드리운 물빛 청아한 날엔
당신은 왜? 내 가난함을 사랑해 주십니까? 왜? 나의 외로움을 열애하고 있습니까? 나는 이미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롭지 않습니다. 나보다 더 가난하고 더 외로운 것이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랑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왜? 내 아픔을 당신 것이라 합니까 왜? 나의 번민 조차 당신 것이라 합니까 나는 이미 아픔이나 번민을 잃었습니다 당신이 몽땅 가져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텅텅 비어버린 나를 사랑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왜? 나의 아성(牙城)을 완고하게 지켜 주시려 하십니까 하지만 나의 아성은 이미 없습니다 내 스스로 허물어 버렸지요. 돌무지 같은 나의 아성에 갖혀 살아야할 어리석은 나는 지금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친구이고 내 삶의 피안이기에 거추장스런 명예나 권위에 집착할 아무런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눈 뜨고 바라보면 내 삶의 종말까지 서슴없이 받아 줄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아름다운 대지가 넉넉하게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내 삶의 소중한 자유를 위해 내 자유를 외워싼 하찮은 아성의 돌무더기를 스스로 헐어 버렸답니다
너! 왜 사누? 노린재에게 물었습니다 "하느님께 물어보소 한평생 살아가는 인간보다 한 계절 살다가는 내가 더 바쁜 몸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