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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사람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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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2-27 13:51 댓글 0건 조회 1,09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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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사람이 누구?


   엊그제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숱한 사연이 이번 동계올림픽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에 어떤 사람들은 평창이 아닌 평양올림픽이 될 것이라면서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사람도 있었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큰 일을 치르는데 잡음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보지만 그 잡음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그래도 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지라 모양새가 썩 어울리는 접근은 아니었다고 본다.

 

   동계올림픽은 아무나 개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날씨라는 상수인 것이다. 대관령은 우리나라(남한)에서 가장 추우면서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추운 곳만 염두에 둔다면 강원도 철원이나 김화, 춘천, 홍천 등이 거론 될 수 있을 것이나 그곳에는 설상경기를 할 수 있는 눈이 많지 않기에 적지로 꼽히기에는 몇 %정도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기사 지금은 인공눈으로 그런 제약조건을 커버 할 수 있으나 상징적인 면에서 눈의 고장에서 치르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였기에 평창이 동계올림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곡절도 많았다. 시빗거리는 곡절에 못지 않게 많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과정을 모두 녹여서 이번 올림픽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경기 그 자체에도 역점을 두었지만 문화라는 장르를 접목시키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냥 썰매나 타고 스케이트 경기나 하는 올림픽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를 열어보고자 하였다. 첫 숟가락에 배부르지는 않겠지만 동계올림픽과 함께 문화올림픽을 열어보고자 했던 것 자체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고 본다.

 

   우리 고장은 예로부터 고유한 문화를 많이 간직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대관령이라는 준령 덕분에 우리 고장의 문화가 독특하게 유지 발전되었던 것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본다. 이런 문화적 유산이 있었기에 이번 문화가 곁들여진 올림픽으로 자리매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문화는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의 K-POP이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한 것도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문화영역을 우리 스타일로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새로운 감동을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문화야 말로 다음 세대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보물이 되리라 본다.

 

   어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에서 다양한 장르에 퍼포먼스가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홀리다 시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면 하나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사로잡았다고 본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엮기고 승화되어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폐막식 문화를 창출한 것이다. 관중석에 현란하게 비쳐진 각국의 국기 문양은 많은 사람들을 잠시나마 감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과거 우리가 모교에 다닐 때 카드섹션을 했던 기억이 새롭게 오버렙되었다. 인간이 해야 할 카드섹션이 컴퓨터와 새로운 조명의 세계에 자리를 내 주게 되었다는 것도 느꼈다. 과학과 기술, 디자인의 세계에 끝이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 의해서 만들어진 장면이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답다 하여도 인간만 하겠는가? 인간에 의해서 연출되는 아름다움은 컴퓨터가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감성적인 매력을 풍기리라 본다. 엊그제 폐막식의 시작을 울리는 의식 중에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올림픽 자체가 역동성을 강조하다보니 모든 의식이 강하고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쪽으로 기획되어 있는 것도 부인치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애국가를 부른 사람은 젊은 사람도 아니고 중년도 아닌 노년의 소리꾼에 의해서 불리어졌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다른 나라에 알려질 정도의 성악가가 부를 것이라 지레짐작을 하였으나 의외에 인물이 나오면서 현장의 분위기는 반전이 되었다고 본다.

 

   어제 애국가를 부른 사람은 장**이라는 소리꾼이라고 한다. 필자가 과거에 모 연수를 받으러 갔을 때 그 분이 강의를 하면서 소리를 수강자들에게 들려주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더 친근하고 강렬하게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젊음만이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편견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라 본다. 나이를 먹은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게 한다.

 

   과거에는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에 비례하여 권위가 생겼었다. 오죽하면 장유유서가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떠 올랐을까? 구한말까지만 하여도 담뱃대만 물고 있어도 저절로 권위가 섰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나이를 먹는 것이 마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뒷방 늙은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세상이 빠르고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에서 나이를 먹은 사람이 그 시류를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을 잘 살린다면 제2에 제3에 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세계는 넓고 이루어야 할 영역은 무수히 많다고 본다. 늙어서 못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이 할 일이라는 것은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라 본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본이 아니게 소홀했던 점은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를 운용하는데 젊은 사람들 보다 한 박자 늦었다는 것 뿐이다. 세상은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번 동계올림픽을 통하여 가슴으로 보았다고 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식견, 경험 등은 너무나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그 자산을 어떻게 디스플레이를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의 숙제인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숙제를 잘 해 온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하였다. “ 참 잘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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