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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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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11-30 08:23 댓글 0건 조회 9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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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사미


   시작은 창대하나 결과가 쥐꼬리처럼 초라한 것을 일컬어 용두사미라 말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살아있는 언어로 각광을 받는지도 모른다. 좋은 말일수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사랑을 받는 것은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용두사미가 좋은 말인지 아니지는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와 타인을 평가하는데 가장 흔한 잣대로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용두사미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라 한다. 옛날 송나라에 진존자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승려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 만났음으로 진존자는 그 승려에게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니 으악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네요. 그런 대답에 진존자는 이 승려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내가 당했군.”이라고 푸념을 하는데 그 승려가 또 으악하면서 더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승려가 기백도 있고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찬찬이 살펴본 결과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지라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을 하는데 제 말에는 어떻게 대답해 주실겁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승려는 마땅히 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은 거창했으나 결국은 미약으로 끝났다는 이야기다. 마치 머리는 용처럼 요란했으나 그 끝은 뱀 꼬리처럼 흐지부지 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용두사미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신 분이 농고에 다니던 시절, 모 선생님이셨다. 이 분의 말씀은 거의 공자님 수준으로 제자들에게 격이 떨어지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신 분으로 기억된다. 농고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 줘 봐야 의미가 별로 없다는 것쯤은 누구보다도 잘 아셨겠지만 그래도 수준 높은 이야기만 해 주시려고 무진장 애쓰신 선생님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격을 갖추는 것도 그 격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선생님은 늘 학생들을 격과 품위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분은 이승에 아니 계시기에 실명을 밝히지 않음을 양해 바라는 바이다.

 

   이야기를 잠시 돌려서 역발상으로 사두용미를 바라보면 어떨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우리는 늘 거창한 시작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끝이 시작보다 조금이라도 신통치 않으면 용두사미의 논리에다 맞추었다고 본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큰 것으로 옮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천 원짜리 로또복권을 샀는데 몇 억대에 당첨이 되었다면 이는 용두사미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 발생되었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이런 경우를 사두용미라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렇게 끝이 좋은 것을 우리는 그냥 대박이라 부르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사람들은 왜 시작보다 끝이 신통치 않았을 경우는 고상한 사자성어를 빗대면서 처음보다 잘 된 경우는 흔해빠지면서 별로 격 있는 표현도 아닌 대박이란 말을 쓰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흐름이 그렇게 가니까 따라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지만, 만물의 이치에서 아귀가 맞지 않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면 더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용두사미에 대입시켰을 때 가장 일상적으로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경우가 흡연자들의 담배끊기

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술을 너무 좋아하여 가족들에게 늘 핀잔의 대상이 되는 가장의 경우 어느 날 절주를 한다는 선언을 했을 경우에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신경을 곤두세우리라 본다. 일상생활에서 새로운 전기를 줄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고 그 결과가 흐지부지되면 영락없이 용두사미의 올가미에 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 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계획을 쓸데없이 떠 벌리는 바람에 실없는 사람, 또는 신뢰성이 별로 가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용두사미 격으로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뻥이 심하거나 실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의견을 제시한다하여도 그 당사자가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다면 그야말로 용두사미의 전형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말한 계획에 대하여 실천을 하는 사람이 신뢰를 받는 것은 당연하리라 보나, 인간세계에서 언행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본다. 그렇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음으로서 타인에게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 줄 수 있는 표현이 용두사미일 것이다. 하다가 제대로 안되면 그냥 용두사미 한 바가지만 뒤집어쓰면 어느 정도 합리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합리화의 도구가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정신세계를 좀 더 부드럽게 해 줄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용두사미라는 말을 듣기 싫다면 어떤 일이 던 성취가 되지 못할 영역은 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담배를 끊을 용단이 부족하다면 담배를 끊어야지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담배를 정신건강을 보호해주는 좋은 매체로 이야기한다면 그래도 자신에 대한 합리화는 되리라 본다. 그보다 더 원대한 일을 도모하는 데는 용두사미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중이야 어찌되던 꿈이나 배포는 일단 키워보자는 것이다. 꿈이 초라하면 설사 그 꿈을 이룬다하여도 초라한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거창한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애를 쓰다보면 그 목표점은 아니라도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의 달력도 이제 한 장만 달랑 남았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낸지 엊그제 같은데 11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온 것이다. 11월의 마지막 밤을 애잔하게 노래하거나 아름답게 묘사한 경우는 드물다고 본다. 필자가 살아온 경험으로 보았을 때 11월만큼 어정쩡한 달도 흔치 않으리라 본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에는 너무 늦은 달이고 그렇다고 정리를 하자니 12월이 버티고 있는 관계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단정지어 이야기하기가 좀 어려운 달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11월 없는 1년을 보낼 수 없지 않은가. 좀 운치있게 표현한다면 만추의 달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만추라는 것도 낭만이 있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이야기지 생업에 찌든 사람은 그저 겨울로 가는 다리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하였던 오늘 만 가면 내일부터는 공식적인 겨울로 들어가게 된다. 지난 1년을 결산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을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의 2017년이 용두사미의 해가 되었는지 아닌지는 오늘이 지나면서 서서히 윤곽이 들어날 것이다. 12월에 새로운 일을 도모한다는 것도 좀 그렇고 도모할 분위기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발상을 하는 사람은 12월을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로 만들 수 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데 시와 때가 어디 있겠는가? 하루라도 젊었을 때 , 그리고 생각났을 때가 가장 최적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새 일은 새해에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쩔어 있다고 본다. 매년 하는 일처럼 년초에 거창한 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그 해가 저무는 연말에 정리를 해 보면 십중팔구 용두사미로 살아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용두사미는 인간의 일생에서 떠날 날 없는 것이다. 많은 인간들은 태어날 때는 장군감이었지만 죽을 때는 흐지부지하게 이승을 하직하게 된다. 이 또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용두사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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