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강감찬장군 동상 밑에서 뽀뽀하다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9-04 09:58 댓글 0건 조회 987회

본문

          강감찬장군 동상 밑에서 뽀뽀하다가


   일전에 모 인사와 점심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 그 사람은 필자와 동창이었는데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 그야말로 웃기지도 않은 옛날에 추억담이 나왔다. 그 중 하나, 예전에는 풍기문란을 엄청 단속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에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국민들을 쓸데없이 괴롭혔던 정권이 있었다. 억압과 폭력으로 백성들을 노골적으로 길들이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살벌한 과정에서 웃기지도 않은 에피소드가 많이 나왔다는게 더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과거 유신시절, 국민의 입과 생각을 한 방향으로 틀기 위해서 철권정치를 하였던 시절이었다. 말을 조금이라도 안 들으면 국가보안법 같은 무시무시한 법에 걸어 넣어서 국민들을 달달 볶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유신의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일상적인 이야기 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 군사정권 시절에도 국민들을 볶는 것은 유신시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일상적인 자유도 억압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 중 재미있었던 억압의 대상이 장발족이었다. 지금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빼 놓고 머리를 기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머리가 긴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길 다는 잣대가 너무 엄하다 보니 귀를 덮는 머리도 모두 장발족의 유형에다 집어넣고 단속을 하던 시절이었다. 마치 학교에서 머리가 긴 학생을 붙잡아다 혼을 내는 식이 사회에서도 횡행했던 것이다. 살아가는데 머리카락이 좀 길면 어디가 덧나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쥐 잡듯이 장발족을 잡아 족쳤던 고약한 시절이 있었다. 머리가 길어서 뭣이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고 본다. 혹시 샴푸 공장 사장은 긴 머리카락으로 인하여 샴푸 소비가 많아서 좋았을는지는 모른다.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단속거리는 미니스커트였다고 본다. 아니 자기돈 내고 짧은 치마를 사서 입겠다는데 왜 단속을 하는지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단속 기준이 더 애매모호 하였다고 한다. 무릎 위 몇 cm이상 되면 안 된다는 논리이다. 문제는 무릎의 기준이 어디냐가 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 당시에 문제만은 아니었고 그 후 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재는 척도로도 계속 이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자로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랄까, 단속반의 눈길을 피해가면서 미니스커트를 더 입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코메디보다 더 웃긴 이야기가 그 당시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음악은 또 어땠는가? 소위말해 유행가가 나오면 한 소절 한 소절 엄격한 잣대로 검열하여 부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대표적으로 양**의 아침이슬의 가사내용 중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소절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왜 태양이 허구하게 많은 대상을 마다하고 묘지위에서 떠오르게 묘사를 해야 하느냐가 촛점이 었다. 아니 음악은 예술 작품인데 태양이 묘지위에서 떠오르던 소나무 위를 지나서 떠오르던 무슨 대수냐 이 말씀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잣대를 들이대고 트집을 잡아서 멀쩡한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였던 것이다. 이런 노래를 함부로 부르다 보면 이 또한 경범죄로 걸려 봉변을 떨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30여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다. 그냥 일화가 아니라 실화다. 물론 필자의 이야기는 아니고 필자의 친구가 겪은 이야기이다. 당시만 해도 상당히 고루한 시절이었던 만큼 연애도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연인끼리 뽀뽀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용납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일을 할 경우 으슥한 곳이나 컴컴한 밤에 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좀 조용하고 으슥한 곳을 찾는다는 게 관악산 밑에 서울대가 있고 그 옆에 낙성대라고 있는데 그곳에서 사건 아닌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곳에는 고려시대의 귀주대첩의 선봉장이었던 강감찬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곳이다. 거기서 필자의 친구와 그의 애인이 뽀뽀를 하다가 경찰에게 바로 걸렸다. 이유는 풍기문란 죄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당시에 얼마나 백성들을 달달 볶았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너무 진하고 특이한 추억을 남겼을까 그 연인은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는 후일담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