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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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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8-01 08:09 댓글 0건 조회 8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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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라.

 
   우리나라만큼 과거성적을 중시하는 곳은 없으리라 본다
. 학교라는 이름만 붙으면 시험을 봐야하고 그 결과에 의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한국에 태어나 시험을 잘 못 본다면 이는 원초적으로 불리한 출발점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시험이라는 것도 천편일률적으로 국 영 수 사 과를 근간으로 보는데 이 또한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결과가 나와야 서열상 앞으로 오게끔 되어있다. 인간은 신의 영역이 아니한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있지 않게 태어났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모두 잘 하게 만드는 신비한 틀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싫던 좋던 서열문화의 대열로 끼어들게 된다. 일단 장유유서를 바탕으로 먼저 태어난 순서에 의하여 서열이 매겨진다. 물을 먹어도 윗 서열부터 이루어지고 밥숟가락을 들어도 먼저 서열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서열이라는 일률적인 잣대를 대면 획일적인 통제에서는 편리할 수 있겠으나 합리적인 판단에서는 많은 오류가 나올 수 도 있을 것이다. 물을 마시는데 왜 서열 순으로 마셔야하는가 이 말씀이다. 제일 목마른 사람이 먼저 마신다 해도 어디가 덧나거나 잘못되지는 않으리라 본다. 이런 서열문화가 학교에서도 자행이 되고 있다. 시험을 봐서 최 상위 서열 밖에 벗어난 99%는 상대적인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선두에 있는 학생들의 성적을 받혀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요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대입수능을 보는 수험생들이 줄어들어 1등급을 받는 학생들이 줄어든다고 큰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성적이 좋던 그렇지 않던 학생은 다 같이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본다.

 

   소위 말해서 사회에서 선호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세계가 좋아서 갔다기 보다는 성적에 의해서 선택된 경우가 더 많으리라 본다. 잘 나가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도 유수한 곳의 출신들이 주름을 잡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시험에 의한 성적이 타 학생보다 앞선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리라 본다. 고도의 판단과 정교한 상식에 의해서 의사가 결정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성적 우수자로 채워 넣는다고 보자. 성적 우수자가 모든 면에서 다 우월하다는 것은 편견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주름잡는 자가 성적우수자라 했을 시 우리나라는 벌써 세계를 주름잡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인간은 모든 것을 골고루 다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가드너는 인간은 다중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개개인 마다 가지는 능력이 다르다고 했다. 실제적으로 사람마다 가지는 개성이나 능력은 천차만별인데 오로지 국영수 성적에만 국한하여 사람을 서열화시킴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적 상위자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느냐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의 경우 성적상위자는 무조건 법학이나 의대로 가야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힌지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우수한 두뇌가 많은 나라에서 일류 인간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의한 구조적인 모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국영수를 제대로 못하면 학생 본연의 가치조차 인정을 해 주지 않는 교육현장에서 미래에 이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양성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매년 많은 학생들이 상급학교나 사회로 배출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로나 진학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본다. 우리처럼 다양한 진학과 진로의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성적의 서열만을 요구하고 있는 불합리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제도를 한 번 살펴보자. 이는 일들에서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그야말로 교육의 근본 자체를 망각시키는 정책이라 보면 될 것이다.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대입수능에서는 오로지 국영수 5지선다에서 잘 선택하여야지만 좋은 성적으로 일류대학에 남들이 선호하는 학과로 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재주나 능력과는 거리가 먼 교육정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을 가든 사회로 나가던 자신의 천부적 재능과 관계없이 오로지 성적순으로 끊기다 보니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재미없는 학문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흥미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된 것이다. 일류대학, 일류회사에 입학이나 입사를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그 이후에도 학문을 계속하거나 주어진 업무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즐기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는 고유한 능력과 재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 지역의 특성화고등학교는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성적이 떨어져 할 수 없이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하다.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 만큼의 학생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입학을 하려는 학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인문계에서 떨어져 밀려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원초적으로 입학생 수가 부족한 시대로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지만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신입생을 모집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심을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특성화고등학교는 다양한 학과 중심으로 모집을 하게 된다. 인문계 고등학교처럼 대학이라는 다음과정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이 아닌 사회로 진출을 해서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완성교육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중학교 때 성적보다는 그 학생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우선시 하는 전형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인문계가 아닌 이상 국영수 성적으로 잘라서 입학을 시킬 이유가 크게 없는 것이다. 특성화의 취지에 걸맞게 그쪽에 재능이나 능력이 있는 학생을 모집하면 될 것이다. 입학전형에서 중학교의 성적을 요구한다는 것은 특성화고등학교의 다양한 학과에 맞는 학생을 모집하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을 것이라 본다. 그들이 해당과에 들어와서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보고 선발을 하면 될 것이다. 중학교 때 성적을 들먹거려 자존심을 구길 필요 없이 천부적인 능력과 재능, 그리고 그들의 희망을 선발기준에 넣으면 이상적일 것이라 본다. 그렇게 된다면 특성화고등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성적으로 인하여 왔다는 낙인으로부터 자유스러워 질 것이라 본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학교로 거듭난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더 받을 수 있으리라 본다.

 

   과거의 성적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면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사람들은 사회에서 늘 성적우수자의 그늘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세상은 성적순으로 부나 권력,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현실에서 많이 보아오고 있다. 과거성적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대열에 끼었던 1%도 채 안되리라 본다. 너무 과거지향을 외치다 보면 정작 잠재 능력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면서 국가 전체 능력의 잠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을 타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과거 성적보다는 미래의 능력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시험이라는 보이지 않은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의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국영수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선호하는 일을 함으로써 얻어지리라 본다. 시험이라는 넘지 못할 굴레에서 벗어나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 이 시대의 소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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