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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길 위에서 길을 묻다 76 - ‘시네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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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17-07-26 17:38 댓글 3건 조회 9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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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시절인 60년대 학교운동장에서는 곧잘 영화가 상영되곤 했습니다.

형과 누나들의 손에 이끌려(기실은 떼를 쓰다시피 졸라서) 십여리나 떨어진 울퉁불퉁한 신작로를 걸어 도착한 운동장에는 미리 확성기를 통해 영화상영을 알려준 때문인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영화라는 문화적 콘텐츠를 마주한 것은 초등 2학년 무렵이었는데 제목은 임자 없는 나룻배였습니다. 물론 흑백필름이었지요. 어린 나이라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영사기의 환한 빛을 통해 희디 흰 넓은 천위에 펼쳐지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진지한 표정이 그저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가끔씩 상영 중에 필름이 끊어지면 형들이 손가락 두 개를 입에 집어넣고 휘파람을 불었는데 혹시 한없이 존경스럽게 보이던 영사기를 돌리던 아저씨가 화가 나서 영화 상영을 그만두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으로 형들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곤 했던 기억이 새록 새록 살아납니다.    

영화는 연속 장면을 촬영한 필름을 빠른 속도로 돌려 강한 빛으로 스크린에 투영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디지털로 제작되다가 보니 필름이 없는 영화가 상당수이지만, 이렇게 보던 영화가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TV처럼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스크린으로 바뀌게 될 모양입니다. 영화 씨네마 천국에서 보던 낡은 영사기와 은막이 사라진, 낮에도 밤처럼 영화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영화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유명 영화인을 일컫는  '은막의 스타'라는 말도 곧 사라지겠지요.     

가끔씩 필름이 끊어져 잇는 시간, 행여 다음 장면을 놓칠세라 화장실로 쏜살같이 달려가던 흑백영화 같은 기억, 아버지의 맥꼽모자를 소박하게 장식했던 낡은 필름, 연인의 손을 조심스럽게 허용받던 컴컴하고 은밀한 영화관에서 한 줄기 빛이 만들어내던 특유의 짜릿한 행복감과 낭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져 있다는 안타까움에 그저 마음이 아릿해옵니다.

새로운 문명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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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널직한 버당에 얼럭대와 광목으로 벽을 치고 상영하던 가설극장
별빛이 반짝이던 낡은 필림은 왜 그리 잘 끊어지는지
툭하면 발전기도 고장나고
가엽게 살던 우리들의 모습이 이제는 그저 아름다운 한편의 추억으로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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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그시절 강릉의 극장으로는 강릉극장,재생관,그다음에 동명극장,시민관 순으로~
영화로는 아리랑,마부,임자없는 나룻배,외나무  다리,별아 내가슴에,오부자 등등,
그리고 외화로는 석양의 결투,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랬었지요. 극장이란 곳이
"...연인의 손을 조심스럽게 허용받던 컴컴하고 은밀한..."
기르쳐주지 않았어도 계승발전(?)해 온 비밀문화였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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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살아온 인생이 한편 영화가 아니겠는지요.
무성영화에서 흑백시대와 칼라시대를 거쳐 디지털 시대, 그리고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 그 이후는 또 어떤 생경스러운 꿈의 시대를 맞을지...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백살을 먹었다면 300년 삶을 살은 것과 같다고...
아침 출근길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인간극장' 마지막회 노 선배님의 생애를 보면서 3개월만 더 사시지...했습니다. 두분 선배님께서는 부디 건강관리 잘 하시고 꼭 백수를 채우셔서 나중에 '한오백년' 살았다고 말씀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