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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냐? Why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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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냐? Why냐?
아이를 키우다보면 별의 별 사례를 다 겪게 된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서는 슬슬 반항까지 하는 모습에서 부모는 아이들보다 먼저 이성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을 인위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수월치만은 않은 것 같다. 이에 대한 연구도 많았지만 속 시원하게 해결책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다 파악한다면 그건 심리가 아닐 수 도 있을 것이다.
어른은 어른의 잣대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들이밀게 된다. 아이들도 분명히 자신에 잣대가 있을 터인데 어른의 잣대로 들이대면 당연히 거부반응 일으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거부반응을 이름하여 반항이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잣대를 들이대면 간단히 끝날 문제인데 그 잣대가 다름으로 인하여 파열음이 나게 되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들의 대화는 보통의 집안에서는 너무 간단히 끝난다. 대부분 어른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맺음 되리라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들이 가지는 돈 줄과 힘과 경험의 논리가 아들보다 월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연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런 일방적인 결정에 내심으로 수긍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당연히 NO로 갈 것이다.
아이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일까에 대해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요구사항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모두 ‘노’라고 답을 해 버리면 그 아이는 학비를 내거나 차비를 달라할 경우가 아닌 이상 부모와 교감을 가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 자신의 부모와 이야기 해 봐야 답이 뻔 하다는 것을 이미 학습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세계는 어떤가? 애지중지도 모자라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가르쳐 놓았더니 제 잘났다고 버티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버리자니 내 자식이고 끌어들이자니 애물단지가 된 형국이다. 이때에 필요한 작전이 있는 것이다. 작전은 전쟁터나 비지니스계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거처서 전략과 작전을 구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인 것이다.
부모와 의사가 전달된다는 것은 철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이때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원만하게 엮어주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모처럼 입을 열었는데 황당무계한 요구를 한다거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단칼에 ‘NO’라고 외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 자식은 부모에게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대한 적절한 답은 ‘why’라고 한다. 그러면 자식이 거기에 대하여 장황한 이야기를 펼칠 것이다. 그럴 때 마다 why를 반복하면서 부모의 의사를 사이사이에 끼워 넣으면 좋은 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 본다. 십중팔구는 ‘NO’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좋은 부모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전략과 작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성 쪽으로 가는 것이 보통의 상식을 가진 인간일 것이다. 남들이 보았을 때 상당히 스마트한 부부의 자식도 부모와의 갈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자식과 골프와 마누라는 뜻대로 안 된다 하였던가? 개성이 강한만큼 잘 만 관리하면 나에게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는 소재들이 아닐까 싶다. 참고 이해하고 성질도 좀 죽이면 한 줄기의 빛은 부모에게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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