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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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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7-16 16:36 댓글 0건 조회 8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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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고 싶으세요.

 

  글이란 나의 생각이나 식견을 문자를 통하여 남에게 알리는 하나의 도구라 본다. 남에게 식견이나 지식,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루트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말이라 본다. 글을 통하지 않고 이런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로서 말이나 영상, 시범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은 기록임으로 두고두고 남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글을 잘 엮는다는 것은 하나의 창조적 식견의 발로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잘 엮기 위하여 우리는 학교라는 곳에서 수업을 통하여 갈고 닦았다. 이 과정을 다 거쳤는데 어떤 사람은 잘 쓰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보고 있다. 왜 사람마다 글 쓰는 솜씨가 다 다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태어날 때부터 글 쓰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으리라 본다. 보통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트레이닝을 한 결과 글을 잘 엮는 능력을 키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학창시절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면 글을 잘 쓸 수 없다는 것도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본다. 옛날 학교가 없던 시절에 태어났던 사람들도 글을 잘 엮었던 기록을 본다면 천부적인 재능과 글을 잘 쓰고자 하는 열망이 모여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대로 글을 엮기 위해서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글은 말을 문자로 옮겨 적은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말은 잘 하는데 글을 엮는 솜씨가 부족하다면 이는 글 작성 요령의 부족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말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글을 잘 엮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끔 볼 수 있다. 말은 되는데 왜 글이 안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말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반복학습을 했지만 글 쓰는 것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트레이닝도 말하기 보다는 훨씬 덜 신경을 쓰기에 글보다는 말쪽 으로 더 발달하지 않았나 싶다.

 

   이론적으로 글을 만들어 타인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술이라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주어와 술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목적어, 보어, 조사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뜻이 통하도록 엮으면 되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시험 자체를 서술식이나 논술식으로 치르기에 글을 엮는 트레이닝은 많이 하는 편이나 과거에는 선다형으로 치르다보니 글 엮는 트레이닝은 아무래도 소홀했다고 본다.

 

  주어와 술어를 바탕으로 글을 엮는다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원리이고 그 것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의사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엮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엮기 위해서는 엮을 구슬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구슬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구슬은 역시 타인이 이미 엮어놓은 기록물일 것이다. 소설도 좋고 논문도 좋고 사설도 좋고 만화도 좋다. 타인이 엮은 글을 많이 접한다는 것은 나의 글을 살찌울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모방인 셈이다. 독창적인 모방이 재창조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좋은 소재는 역시 경험일 것이다. 경험을 잘 엮으면 그야말로 독창적인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모두 경험할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남의 경험을 빌러 나의 것으로 재창조 하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의 뜻을 빌리지 않는다하여도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한다. 어떤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 하여도 관심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남의 글만 주구장창 읽는 것 보다는 내 자신이 글을 써 남들이 읽어 보도록 하는 것에서 새로운 맛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은 내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을 비쳐주는 거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거울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주얼에 대하여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 보면 될 것이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세계가 가지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길 중에 중요한 포인트는 글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글을 안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우리가 접하는 글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스마트폰을 통한 카톡이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런데 쓰는 짧은 글은 잘 쓰는데 논리적이고 장문의 글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으리라 본다. 문학가 헤밍웨이는 글을 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쓴 글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했다. 우선 글을 써 놓고 그 다음은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컴퓨터 없이 원고지를 이용했던 시절에는 글을 수정하고 다듬는 작업이 어려웠다고 본다. 간단한 문구나 오탈자 정도는 큰 문제가 안되었지만 문맥 자체를 뜯어 고치는 작업은 원고지 상에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뒤죽박죽 된 글도 ctrl c, ctrl v로서 간단하게 수정을 할 수 있는 세계에 와 있다고 본다.

 

  머릿속에 많은 지식과 식견은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리라 본다. 우리가 보는 많은 글에는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을 것이다. 그 주제를 전달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뼈를 보강하고 살을 붙인 결과물이라 본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었다.”라는 것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단 문장으로 끝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그 문장 하나를 가지고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뼈에다 어떤 살을 붙이냐에 따라 나오는 산출물은 각양각색이 될 것이다.

  글만큼 창의적인 작업은 없다고 본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의 싯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웠던 사람었느냐.”를 보면서 여기에 나오는 낱말 중에 독자 여러분이 생소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있는지 묻고 싶다. 너무나 평범한 단어인데 이를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 저 넘에 감정까지 가져올 수 있는 마법을 가졌다는 것이다. 터키 출신의 나짐 히크메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무한한 창의성과 가능성을 열어 놓은 글인가? 혹시 내가 쓴 글이 이미 이 세상에 나와 있는데 내가 재탕이나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면 위의 시구를 다시 한 번 읊어보기 바란다.

 

  글 쓰는 것 만큼 out put에 충실한 영역은 없으리라 본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하여도 그것을 제대로 써 먹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머릿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하여도 그것을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면 땅속에 보물이나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실제로 땅 속에 보물을 캐내는 과정이 쉽지않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보물을 캐내면 큰 가치를 가지듯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좋은 경험이나 식견을 표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그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타인에게 격한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금전적인 혜택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뭔가 시도하고 싶어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내가 쓴 글이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유치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아니면 나의 정신적 미천까지 까발려 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펜을 드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차 나가지 못하는 것 중에 가장 고약한 것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를 쓰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스페인의 문학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썼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내용만 보았을 때 얼마나 허황스럽고 우스꽝스러운가? 교과서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정신적 면에 혼돈을 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되지 않았는가? 글에 정답은 없다고 본다. 내가 쓴 글은 이 세상에서 나만이 가지는 고유한 영역이라 보면 될 것이다.

 

   좋은 글은 어떤 글이겠는가? 사람마다 평가하는 잣대가 다양하기에 뭣이라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글의 본질은 내 생각을 타인에게 문자를 통하여 알린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알려지게 할 것인가에 포인트를 맞추면 될 것이다. 가장 쉬운 것이 대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자신이 지금까지 체험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우리 동문들은 모교 축구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축구라는 단어만 나와도 많은 동문들이 관심을 가지게 돼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모교에 입학하여 학교생활을 마치고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모교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경험하였으리라 본다. 이런 것을 주저리 주저리 엮는다면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하리라 본다. 타인이 일고 싶어하는 글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이 아닐까 싶다.

 

  글의 표현에서 단문으로 되어 있는 경우는 전달만의 기능을 가질 것이다. 여기에 어떤 살을 붙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문장이 되면서 많은 것을 연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글 쓰는 작업의 패턴은 좀 달라지리라 본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전달이라 보며 그 전달과정에 독자에게 알려주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을 붙혀주면 된다. 예를 들어서 우리 모교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라고 표현했다면 독자들은 이외의 내용에 대하여 엄청 궁금해 할 것이다. 언제 어느 대회에서 어떤 과정을 거처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이런 결과까지 가져 왔다고 표현하면 훨씬 리얼하게 전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아는 것이 현장감 있는 글을 쓰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뼈에 살을 붙이는 것 또한 독자가 어떤 살을 원할 것인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진다면 실감나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은 역시 물 흐르듯 써야지만 읽는 사람들이 부담을 덜 가지리라 본다. 어떤 소설책은 독자가 책을 잡자마자 끝까지 읽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스토리 자체가 자연스럽게 흐르기에 읽는 자도 그냥 따라 읽으면 되는 것이다. 흐르는 듯 쓰기 위해서는 드라마에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당일 마지막 부분 처리를 독자의 궁금증을 최대한 끌어올린 후 종결을 시킨다. 다음회를 보지 않으면 안되게 끔 강열한 연출을 해 놓는 다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 다음에 장면을 읽어봐야 별 감흥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면 중간에서 그냥 끊어지고 말 것이다. 연결을 어떻게 하는가가 독자들이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리라 본다.

 

  아무리 훌륭한 작자라 하더라도 어느 날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변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모를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으리라 본다. 어떤 과정이 글을 잘 쓰는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본다. 작자 개개인 마다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하여 내공을 쌓았으리라 본다. 가장 보편화된 글쓰기는 역시 제도권의 학교가 아닐까 싶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글을 만들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 물론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방법이 아닌 포괄적인 교수법으로 지도가 될 것이다. 결국 학창시절에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아서 나름대로 훈련을 쌓는 방법을 추구한 사람은 좋은 글을 쓰는 사람 대열에 끼어들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어린 시절부터 문학가가나 기자가 된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쪽으로 열정을 쏟은 관계로 좋은 글을 구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학교를 벗어난 사람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매일 한 편에 일기나 수필을 써 본다면 어느 날 글 솜씨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글의 소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리라 본다. 글은 농부가 농사를 짓는 과정이라 보면 될 것이다. 농부가 토양에 씨를 뿌리는 것을 시작으로 농업이라는 행위가 시작된다고 본다. 글 또한 펜을 잡는데서 부터 시작이 되리라 본다. 펜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고 가을날에 수확을 기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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