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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쓰고 가르치는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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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쓰고 가르치는 교사
세상에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내 머리 속에 든 지식이나 식견을 타인의 머릿속에 집어 넣는 일이다 했다.
유사 이래 가장 악을 쓰고 가르쳤던 방식 중 하나는 스파르타식 교육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엄격했던지 어렸을 때 싹수가 노랗다고 인정되는 아이는 아예 도태를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엄격하다보니 그 교육방법이 지금까지도 화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런 교육은 얼마 전 까지도 통하였던 방법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교육, 군사문화가 창궐하던 시대의 교육은 스파르타식의 교육법에 더 가까웠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교육을 주관하는 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용납이 안 되던 시절에 교육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율성이나 창의성, 자기주도적 교육, 미래지향적 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고 본다.
당시에 기득권 층에 입맛에 맞는 교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획일화, 비인격적인 서열화 , 행정편의적인 표준화, 하향평준화, 상명하달의 교육으로 치닫게 되었다.
모든 교육은 교육입안자의 입맛에 맞게끔 재단되었다.
그렇게 재단된 교육과정을 가지고 학교 현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이 성행되었다.
교육수요자의 욕구나 희망은 뒷전으로 하고 오로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양성하는데 주력하였다고 본다.
이러다 보니 학교 현장에 교육도 자연스럽게 획일화된 강압적인 주입식 교육이 주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은 선생의 말을 잘 듣고 따르고 가르쳐 준데 대하여 비판 없이 수용하고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이 인정을 받던 시절이었다.
유능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요구하는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수업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식견을 구조화 시켜 수요자들에게 잘 먹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교육수요자들은 선생의 말을 잘 듣고 시험을 잘 치르면 그걸로 학교생활이 제대로 된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수요자들의 층은 다양한 법이다.
교사의 지시를 잘 따르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잘 따르지 않은 아이들도 잘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제어책도 서슴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 성적이 교사의 뜻대로 안 나오면 몽둥이로 제어하여 아이들이 겁먹고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끌고 갔던 흑역사도 있었다.
이런게 바로 스파르타식 교육의 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엄한 시어미 밑에서 생활한 며느리가 나중에 엄한 시어미가 된다고 했다.
엄한 교육을 받은 학생이 훗날 교사가 되었을 때 자신들이 배우고 익혔던 방식을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전수를 하는 것이다.
스파르타식으로 배웠던 자가 교사가 되었을 때 자신의 잣대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용납을 하지 않은 교육이 이어져 온 것이다.
교사 자신들은 입에서 거품을 내면서 가르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인식했던 터이라 시대와 사회가 바뀌어도 여전이 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잘 가르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돌출되어 있다.
EBS교육방송의 강의, 인터넷 강의, 유튜브를 통한 강의, 일반 방송매체에서 나오는 특강, 교육현장에서 유수한 강사의 강의 등 일류급 강사들의 강의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반 교사가 용을 쓴다 해도 스타급 강사의 강의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교사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더 침을 튀겨가면서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방법을 바꿔서 이 시대에 맞게 재구성해서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을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이다.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악을 쓰고 가르치는 그 열정과 기백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교육수요자들의 입장에서 실효성이 떨어질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도 생각해 가면서 교육에 임해야 할 것이다.
교사가 과거에 그렇게 배웠기에 그 방법을 현재에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수한다는 것은 너무 안일하고 무책임한 교육행위일 것이다.
배우는 학생들이 왜 저 선생님은 비싼 밥을 먹고 악을 쓰면서 가르치는가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모를 일일까 그렇지 않다면 현실에 맞추어서 교육을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몽둥이만 안 들었지 입에 침을 튀겨 가면서 가르치는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전적인 방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변했다.
교육방법도 이와 궤를 같이하여 변하는 게 맞다고 본다.
현재 교단에 서 있는 교사들이 자신이 배운 방법을 그대로 전수한다면 현상유지는 될 수 있을지언정 발전을 기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20세기식의 교육방법으로 교단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키호테식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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