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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77 - 마이카 이야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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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을 하니 뜬금없이 본부에서 불시감사를 나와 있었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군사정권 시절, 그들은 정부조직 곳곳에 현역과 퇴역군인들을 심어놓고 공권력을 전횡했다. 털끝만한 빌미만 있어도 사회정화차원에서 다루던 때라 군 출신의 감사원들은 영장도 없이 책상서랍을 뒤지고 통장을 조회하고 마치 범죄인 심문이라도 하듯 예산집행내역을 다그쳤다.
나는 시종일관 당당하게 감사에 임했다. 그럴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흠 잡힐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당시 현 직장에 대해 큰 매력을 못 느끼고 있었기에 하시라도 미련두지 않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사원들은 온갖 것을 이 잡듯 해도 문제점은커녕 다른 기관보다 월등한 실적향상과 예산절감의 우수사례까지 나오자 머쓱해졌는데, 불시감사의 의혹을 풀고 보니 사내 누군가가 나의 자가용 구입에 대해 비공식 채널로 동향보고(?)를 하고, 상급기관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는지 특별회계감사를 했던 것이었는데, 당시 차를 36개월 할부로 구입한 증거까지 제출받고 보니 헛다리를 짚게 된 그 서슬 시퍼렇던 감사원들은 오해가 있었다며 술까지 거하게 사주고 올라갔다.
그런데도 감사를 받은 한 달 여 후 나는 감사결과와 상관없이 차 상급기관의 명에 의해 순환근무를 사유로 기관등급이 낮은 동해시로 전보조치가 되었다. 상급자도 보유하지 않은 자가용을 그것도 중고도 아닌 최신형으로 구입한 괘씸죄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자가용을 구입했다고 불시감사를 받고 괘씸죄에 걸려 다른 곳으로 전보조치 되는 참 어둡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장황해졌는데 나의 좌천은 반전을 불러왔다. 차를 사놓고 운행 할 일이 별로 없어 이제나 저제나 주말이 올 때만 기다리던 나에게 매일 마이카로 하는 출퇴근의 기회는 마치 잘 짜여진 인생시나리오 같았다.
홍제동 나들목을 출발하여 새로운 임지인 당시만 해도 동해시의 중심이었던 묵호까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40여km의 새로 생긴 고속도로는 환상의 드라이브코스였는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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