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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75 - 『장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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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를 넘기면서까지 이어진 긴 장마가 끝났다. 그야말로 길長字 ‘長마’였다. 아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는 있지만 코로라19에 물난리까지 정신없이 2중고를 겪던 차 절기는 어느새 가을에 들어선 것이다.
철없던 유년의 장마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 시절 장마는 더러 긴 날에 걸쳐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무더위를 식히는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한 낮에 간헐적으로 한바탕씩 소나기를 내려주고 그치곤 했다. 그때마다 양철지붕 골을 타고내리는 낙숫물을 대야에 받아 머리를 감거나 섬돌 틈바귀에 숨은 듯 피어난 채송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수에 젖어들기도 했는데, 누님들이 봉숭아 붉은 꽃잎을 백반과 버무려 질경이 잎에 싸서 손톱에 무명실로 처매어주던 시간도 소나기가 쏟아 붓던 그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깜빡 낮잠이 들었는데 형이 유난스럽게 깨우며 등교가 늦었다기에 아침밥도 거른채 집에서 학교까지 십여리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갔는데...학교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학생들은 오지 않고 날씨가 조금씩 개이면서 서쪽 하늘에 저녁놀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그제야 속을 것을 알고 분하고 억울해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장마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분별력이 희박해져 생긴 지금도 빙긋이 웃음이 지어지는 기억의 한 장면이다.
소나기가 멎으면 거짓말처럼 하늘은 티끌하나 없는 쪽빛이 되고 흐르듯 이동하던 소낙비를 따라 먼 산 위로 피어나던 무지개는 채도를 더했으며, 왕거미 줄에 알알이 맺혔던 물방울은 보석처럼 햇살에 반짝이며 금시라도 털어질 듯 바람에 일렁였다. 그제야 악동들은 반쯤 풀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다람쥐처럼 날렵한 몸을 날려 반두나 족대를 들고 냇가로 달려 나가곤했는데 내는 영양실조로 얼굴에 온통 버짐이 번진 아이들에게 영양 보충의 보고였으며 가장 친근한 놀이터였다.
내에는 송사리 버들치 꺽지 깔딱메기 피라미 쉬리 퉁가리 미꾸라지 등이 어우러져 살았는데 이런 잡어들을 딱 먹을 만큼만 잡아 잘 익은 고추장 듬뿍 풀고 수제비를 넣고 끓여먹던 매운탕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먹고 또 먹어도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아직 옅은 구름이 아쉬운 듯 하늘가를 맴돌며 떠나지 않고 있지만 올 장~마는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내심 올 여름에는 훌쩍 고향마을로 가서 함께 자랐던 악동들을 만나 그 시절처럼 소나기에 온몸을 맡겨보리라 생각을 했지만 녀석들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서둘러 먼 세상으로 갔거나 대부분 객지에 나가 살고들 있으니 미리 약속을 잡기 전에는 그 마저도 쉽지가 않다. 이미 허물어지고 그을음 낀 구들장 몇 장 뒹구는 고향집 텃밭 한 편에는 올해도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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