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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73 - ‘언눔’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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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0-07-02 16:40 댓글 0건 조회 9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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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양평의 두물머리>

언눔 전우익
. 그는 현학을 거부하는 소탈하기 그지없는 정직한 농부이자 재야 사상가이다1925년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대지주의 손자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서울로 유학을 하고 경성제국대학을 중퇴했다. 해방 후 혼란기에 친구들은 정국을 흔드는 권력자들이 되었지만 미혹되지 않고 자유인의 꿈을 안고 고향 봉화로 낙향을 한다 

그러다가 '민청사건'에 연루되어 6년여간 수형생활을 한 후 주거를 제한받게 되고 봉화 구천마을에서 홀로 농사짓고 나무를 키우며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아호가 '아무개'를 지칭하는 '언눔'이라는 사실이다.(영동지방에도언눔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가 쓴 육필의 제목이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그는 어지러운 세상사를 농사를 통해 체득한 질박한 언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참삶을 깨우쳐 준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 농사꾼으로 자처하며 시종 농사짓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책을 읽다가보면 농사짓는 이야기 속에 큰 우주가 있고 역설의 철학과 사람에 대한 넉넉한 베품이 빛난다. 혼자 잘 살아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의 삶을 지향해온 그를 시인 신경림은 깊은 산속의 약초같다고 했다  

산에들면 나무 한그루가 되고, 밭에서면 더불어 고춧대가 되며, 들판에서는 이름 모를 들꽃이 되는 그의 글은 봄날 불어오는 남풍처럼 조용하면서도 향기와 품격, 삶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은퇴 후 귀촌을 하여 조용히 농사를 짓는 동문들이 의외로 많다. 근본이 농업계고등학교를 나왔으니 어쩌면 제격이기도 하다. 그들을 찾아 한 여름 밤, 별빛이 초롱초롱하고 반딧불이가 호르륵 호르륵 날아다니는 농가의 뜰에 자리를 틀고 메밀묵 무침에 막걸리라도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왠지 오늘은 언눔, 그의 삶을 닮고 싶다 

오늘날 일이 크게 둘로 양분되어 정신노동, 육체노동으로 나누어졌는데 이것도 빨리 어우러져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경독耕讀의 일체화라고 여겨요. 참된 경은 독을 필요로 하며, 도 경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구실도 할 수 있겠지요. 방에 틀어박혀 책상 붙들고 앉아서 천하명문이 나온다면 천하는 무색해질 것입니다.”

-전우익의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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