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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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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20-06-30 11:20 댓글 0건 조회 9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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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와 교장

신도를 구슬려 밥 벌어 먹는 사람들을 목사라 한다.

그렇다면 학생을 구슬려 밥 벌어 먹는 사람은 누구인가.

교장인 것이다.

목사나 교장 모두 사람을 구슬려 밥 먹는 사람들의 부류라 보면 될 것이다.

 

목사와 교장이 구슬리는 대상과 방법은 좀 다르다고 본다.

목사는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만 교장은 나이 또래가 비슷한 아이들에서부터 청소년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주로 말로써 사람을 구슬리는데 그것을 구사하는 공간과 방법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목사는 교회라는 공간에서 신도를 구슬리는 반면 교장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구슬림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방법론에서도 목사와 교장은 조금씩 차이가 남을 볼 수 있다.

 

먼저 목사가 사람을 구슬리는 방법에 대해서 들여다보자.

일단 신도가 가지고 있는 종교와 관련된 잡다한 편견을 제거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잡다한 종교적 신념과 편견이 강한 사람에게 아무리 설교를 해도 먹혀들어가기가 좀 어렵다는 것쯤은 다 알고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설픈 신도에 혼을 빼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말이 쉬워 혼을 빼는 것이지 그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리라 본다.

 

일단 특정종교 이외에 관련한 혼을 뺀 다음 새로운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를 심어주는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라는 게 생각처럼 잘 파고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철없는 시절부터 부모 따라 교회에 오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교적 면역에 들어갔음으로 큰 수고로움 없이 신념을 불어 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특정 종교의 신념이나 교리를 불어넣어 독실한 신자로 만드는 과정은 멀고도 험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목사가 해야 할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제대로 된 신자를 만드는 과정임으로 종교적으로 교화를 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은 특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교회에 나온 사람에게 교회의식이나 설교를 한다고 교회가 추구하는 신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목사가 신도에게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를 심어주는 방법은 안쓰러울 정도로 절박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교회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목사들의 설교 톤은 엄청 높을 것이다.
물론 노련한 목사는 그렇지 않겠지만 열혈 목사들은 높은 톤의 목소리를 구가하리라 생각된다

그냥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설교를 해서는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다 알고 있으리라 본다.

톤이 높고 액션이 크다보니 신도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쓸데없는 혼은 빠지고 목사가 추구하는 세계의 혼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여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정신이 맑지 못한 사람도 그런 목사를 만나면 시원한 물줄기에 들어 온 것처럼 새로운 의식세계를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학교는 어떤가.

학교에 수요자는 배움에 목마른 자들이라 본다.

일부 수요자는 배움과는 거리가 좀 먼 졸업장이라는 것을 따기 위하여 학교라는 공간을 들락날락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찌하였던 학교의 궁극적 목적은 수요자에게 학문을 쉽게 깨닫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라 생각한다.

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사람일 것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배우는 사람의 만족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대부분 책에 있는 내용을 수요자의 머릿속에 집어넣는데 주력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주입식인 것이다.

주입식에 효과가 가장 큰 수요자는 암기력이 뛰어난 아이들일 것이다.

열심히 듣고 외우고 시험보고 망각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여 외우기 쉽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곳이라 보면 될 것이다.

 

시험점수가 가르친 사람의 능력을 좌지우지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다양한 평가의 방법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선다형의 객관식 문제가 주류를 이루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시험에 날만한 것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반복학습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창의성이나 응용성, 문제해결력이 들어설 공간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수요자와 그 가족들은 오로지 점수에 연연함으로 우리의 교육 자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교장과 목사는 수요자에게 말을 통해서 전달을 하는 형태는 비슷하다고 본다.

전달의 결과는 교장의 경우 시험을 잘 보는 것으로 귀착이 되고 목사는 자신이 추구하는 종교의 세계로 흠뻑 빠지게 하는데 주안점을 둔다고 본다.

수단을 비슷할지 모르지만 목적이나 귀착점이 다르기에 전달하는 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에선 이렇게 푸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설교하듯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설교도 잘 만 하면 의식을 개선하는데 엄청난 효과가 있으리라 보나 학교 현장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역으로 교회에서 선생이 아이들 가르치듯 설교를 한다면 신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말을 통한 전달방식이 교회에 가면 교회스타일로, 학교에 가면 학교 스타일로 바뀌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군데 다 말로서 밥을 벌어 먹고 살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지만 버틸 수 있는 곳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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