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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72 - 『해는 중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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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독자분들의 요청에 따라 "코로나 그 100일의 기록"은 자유게시판으로 옮겨 싣습니다. 따라서 연재 때문에 한동안 뜸했던 "길위에서 길을 묻다"를 계속 게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불쑥 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이 나타나서는 자신의 법칙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 모든 것에 새로운 의문을 던지게도 하고 오랫동안 길들여진 규칙들을 뒤집어 버리거나 다시 배치하게도 한다.
공포에 휩쓸린 인류, 흔들리는 사회, 몇 달이 지나면서 이미 그들의 질서에 굴복해 익숙해진 지난의 삶. 하늘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가고, 들판은 꽃들로 지천인데 나는 참 한가하기만 하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무료한 일상이다.
동선을 최소화 하다가보니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쇼파에 등을 붙이고 리모컨을 누르다가 작심이라도 한 듯 서고로 이동해 뒤통수께의 칸으로 게으르게 팔을 뻗어 손에 잡히는 대로 시집 한권을 끄집어낸다.
시간은 코앞에 흔들리는 탐스러운 엉덩이/ 올라타고 싶은 순간과 걷어차고 싶은 순간으로 뒤뚱거린다./ 돌멩이를 삼킨 거위처럼/ - 유계영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 중에서-
모처럼 설거지를 한 후 벗기려 할수록 손등에 척 달라붙어 벗겨지지 않는 고무장갑처럼 걸음걸음마다 코앞에 알짱거리는 시간들...
그 시간이 시인에게는 흔들리는 탐스러운 엉덩이라니 참 엉뚱스럽다. 하지만 기발하기도 하다. 시인의 글처럼 올라타고 싶기도 하고 걷어차고 싶기도 한 것이 요즈음 나의 시간이다. 그러나 고민 끝에 탐스러운 엉덩이를 걷어차기보다는 올라타는 편에 무게를 싣는다.
문제는 올라 탄 후의 일이다. 그 누구를 만난들 뜨거운 포옹이나 황홀한 키스를 할 일도 아니고 조금은 익숙해진 주먹질로 악수를 대신하겠지만 백일이 넘도록 갇혀 근질거림의 극치가 된 몸과 근육이 얇아진 마음,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훌쩍 떠나봐야 하겠다. 내가 정상인으로 활동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어김없이 흐르니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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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가장 큰 불편함은 여행이 제한을 받고 꼭 만나야 할 사람,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여 폐가될까 약속을 잡고도 아직 만나지 못한 분들께 이 난을 통해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진정되는 대로 곧 만나러 갈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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