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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45 - '인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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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19-06-14 12:40 댓글 2건 조회 79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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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만 되면 늘 마음이 헛헛해 진다.
또 한명의 학생을 고국으로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학생 제게예 티르페. 어느 춥던 겨울날, 싸구려 바람막이 하나 달랑 입고 벌벌 떨면서 강의실로 들어선 그에게 입고있던 외투를 벗어주면서 시작된 인연은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한국에서의 첫 겨울이었다.   

정들자 이별이라더니 웬만한 한국어는 말하고 들을 수준이 되고 이심전심, 눈으로도 대화가 가능할 만큼 소통이 자유로워지니 그는 학위를 받고 가족들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선택받은 인재,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만 에티오피아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같은 제3국 학생들에게서 조차 알게 모르게 차별받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늘 가난한 고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탄압받는 에티오피아 국민들을 걱정을 하곤 했다. 선진민주주의를 경험할 소중한 기회이니 학위를 받고 귀국하면 언젠가 에티오피아의 민주화를 위해 대통령에 출마를 하라고 농반 진반 권유를 했지만 늘 빙그레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고국의 정치현실이 녹녹치 않음을 현지소식을 통해서 알고 한 판단일 것이다  

지금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임을 당한다고 손을 목에 대고 가로지르며 그저 대학교수로 평범한 삶을 살겠다는 그에게 나의 권유는 그저 그런 덤덤한 덕담이 되고말았다.    

그는 떠나기 전, 인연을 이어가자며 에티오피아로 나를 초청했다. 다행히 에티오피아와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직항이 생겨 전보다 여행이 훨씬 수월해지긴 했지만 치안이 불안하고 환경이 열악한 곳에 가야 할 큰 기대는 없다. 더구나 내가 간들 작게나마 6년간 보살펴 준 보답이라도 하려고 할 것이고, 이제 막 대학 초임강사로 시작 할 그의 얄팍한 주머니사정을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에티오피아의 결혼풍습에 따라 일찍 결혼하여 두 딸의 아빠였던 그를 동생처럼 아들처럼 여기고 돌보아 주긴 했으나 무슨 대가라도 받을 생각으로 한 일이 아니었으니 소소한 것들이지만 가진것을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선조의 피와 땀과 눈물이 네가 공부한 이곳 춘천에 스며있고, 고국에 가면 한국의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라고 당부했으니 아마도 그는 나의 말을 항시 염두에 둘 것으로 믿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캠퍼스에서 연구실에서 한국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그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을 뒤로하고 이제 그와 붙잡고 있던 인연의 끈을 놓아 주어야 한다  

만날 때는 기쁨으로 시작했지만 헤어질 때는 이렇게 마음을 허허롭게 하는 것이 인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속곤 한다. 하지만 맺지 말아야 했던 인연은 아니었다.  

굿 바이, 제게예 티르페!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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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연2님의 댓글

김석연2 작성일

큰 일을 하셨네요.
개인의 인연이겠지만 먼 훗날 에티오피아와의 큰 교량역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인연 잘 이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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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허 허 학기말이면 늘 있는 일입니다만 이 친구를 보내면서 왠지 마음이 짠해옵니다.
나이가 드는 모양입니다.